[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괴로운 초읽기

〈제10보〉(129~144)=젊은 시절의 조훈현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의 속기(速棋)였다. 수가 한 눈에 보이는데, 그리고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이기는데 굳이 뜸을 들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후배들의 층도 두터워지면서 그도 요즘엔 곧잘 초읽기에 쫓긴다. 바둑이 마음먹은 대로 안 풀리자 시간도 바닥나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놓인 129, 131이 이 바둑의 ‘최종 패착’에 해당하는 문제수였다. 지금은 참고도 1의 자리가 생각보다 컸다. 백 2, 4가 9집짜리인데 비해 5, 7은 그 이상이다. 게다가 선수(先手). 9 이하 14까지 아낌없이 해치운 뒤 15였으면 중앙 발언권은 흑에게 있었다. 이 진행은 미세하지만 흑에게도 희망이 있었다는 결론.

실전은 백이 선수를 잡아 132부터 143까지 정리한 게 흑으로선 매우 아팠다. 144가 놓이니 중앙 흑 전체의 연결이 시급해졌다. 흑은 135부터, 백은 144부터 초읽기 시작. 후야오위야 원래 소문난 장고파니 그렇다 해도 조훈현이 초읽기에 쫓기는 모습은 유난히 애처로워 보인다. 흑의 다음 한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