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 비친… ‘눈부신 그늘’의 메시지

스산한 바람에 낙엽이 이리저리 차이는 고즈넉한 파리의 가을, 그 풍경이 유리 건물 속으로 한 눈에 들어오는 파리 14구의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 독특한 현대 미술 전시회로 파리에서도 명성이 높은 이곳을, 한국의 설치작가 이불(43)이 ‘점령’했다. ‘모든 새로운 그늘(On Every New Shadow)’이라는 제목으로 20점을 선보이는 이불의 전시회가 지난 16일 시작됐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 카르티에 미술관에서 전시한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한 뉴스지만, 그보다는 전시장과 완전히 하나가 된 듯한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매력이 더욱 눈길을 잡아 끈다.

카르티에 재단은 보석 브랜드 카르티에가 설립한 민간 문화재단이다. 장 누벨(Nouvel)이 설계한 미술관은 1·2층이 훤하게 트인 유리 건물이다. 바깥과도 끊임없이 소통하는 그 공간에 들어서니 1층 바닥이 온통 거울로 다시 깔렸다. 천장에서는 크리스털과 유리, 알루미늄 그물망으로 만든 오브제들이 샹들리에처럼 매달려 바닥의 거울에 다시 스스로를 비추고,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햇살에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아름답다”는 탄성이 먼저 나왔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오로지 카르티에 전시회를 위해, 그리고 유리건물로 된 이 공간을 전제해 만든 것들이지요.” “특별한 재료에 집착하지 않고, 주제를 먼저 정한 뒤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를 찾아내 작업한다”는 이불은 이번에 특히 크리스탈 구슬, 알루미늄 체인 등으로 된 오브제를 많이 선보였다. 그 화려한 오브제들 사이에, 작가의 문제의식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군데군데 설치돼 더 강렬하게 작가의 서사를 풀어내준다. 흰색 타일로 대형 욕조를 만들고 검은 잉크를 풀어 선명한 흑백 대비를 보여주는 작품 ‘천지’는 한국 현대사의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준다.

이불은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1999년) 수상으로 이미 국제적 명성을 떨쳤고, 파리 퐁피두 미술관에서 그룹전도 가진 적이 있지만, 파리에서의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