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찬바람이 스멀스멀 세포 속을 파고드는 스산한 늦가을 날씨에, 더욱 소름 돋게 만드는 두 편의 영화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상당수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쏘우(Saw)’ 시리즈와 류덕환 오만석 이선균의 열연이 돋보인 ‘우리 동네’가 바로 그것. 21일 개봉할 ‘쏘우 4’는 여전히 자극적인 화면으로 관객과 살인 퍼즐을 함께 맞춰가며, 29일 개봉할 ‘우리 동네’는 평범한 아이가 왜 살인마가 됐는지의 과정을 치밀하게 그렸다. 두 영화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trauma)가 사람을 어떻게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동네    순진한 얼굴 가진 인간의 내면에 똬리 튼 악마 

그냥 ‘스릴러’라고 생각하면 시시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범인은 공개되고, 계속되는 희생자들에 대한 연결 고리를 찾는 것도 이야기의 주된 핵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선 김이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동네’ 속에 그려진 살인마는 그의 살인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가 왜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됐는지의 심리 변화에 더 주목한다.

평온한 ‘우리 동네’에 ‘모범생’ 청년이 완벽하게 계산된 사건을 저지르는 설정은 인간 속 내재된 악의 본성을 까발리는 듯하다. 티 없이 순진한 얼굴과 섬뜩한 눈빛이 동시에 존재하는 효이를 연기하는 류덕환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가상 동네인 사초동에 발생한 연쇄살인사건. 줄 인형인 마리오네트처럼 초등학교 철봉에 끈으로 매달려 피범벅이 된 채 발견된 시체에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는 장면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자아이와 50대 여성, 매춘부에 이은 20대 여성의 죽음으로 동네는 공포에 휩싸인다.

지하 방세도 못 낼 정도로 근근이 살아가는 추리소설작가 경주(오만석)는 소설을 들이밀어 보지만 ‘리얼리티’가 없다며 망신을 당하고, 집주인에겐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연쇄 살인을 담당하는 형사반장은 경주의 오랜 친구 재신(이선균)이다. 어느 날 경주는 자신을 극도로 무시하는 집주인을 우발적으로 죽이고 연쇄살인사건 중 하나인 양 시체를 처리한다. 재신을 향해 “모방범죄일지도 몰라”라고 먼저 운을 떼는 경주의 두려움에 얽매인 눈빛이 압권이다. 어둡고 괴이한 눈빛은 그동안 순진한 표정으로 사랑받았던 오만석을 단번에 ‘괴물’로 바꿔놓는다.

탁월한 심리 표현에도 불구하고 살인마 효이가 짝사랑한 여자가 타락해 죽였다는 설정은 구태의연해 보인다. 또 아무리 운동으로 단련됐다고 해도 ‘빈약한’ 효이가 거구의 남자를 손톱 가위 하나로 쉽게 죽여버리는 모습도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감독의 시선은 효이, 재신, 경주 세 명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며 인간이 선과 악이라는 금단의 선을 넘는 시점이 어디인지, 모방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지 풀어내는 데 더 집중한다. 스토리 자체의 매력보다는 배우들의 눈빛 연기를 비교해보는 맛이 더 입에 착 붙는다. 29일 개봉. 


쏘우 4    너를 죽여야 내 심장이 다시 뛴다… 피냄새 흥건한 90분 

뇌를 자르는 해부용 전기톱의 파열음. 갈비뼈를 발라내는 수술용 칼의 서걱거림. 시작부터 시각과 청각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극단적인 화면 구성은 90분간 펼쳐질 잔인함을 예고할 뿐이다.

매번 미국 할로윈 시즌에 개봉하며 개봉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던 공포 스릴러 영화 ‘쏘우 4’가 21일부터 국내 관객을 만난다. 3편에서 ‘죽음’을 알렸던 주인공 존이자 살인마 직쏘로 불리는 그의 해부장면부터 시작하는 ‘쏘우 4’ 역시 ‘살인 게임’이 주요 스토리다. 의사들은 그의 위 속에 들어있던 녹음 테이프를 발견, 작동시킨다. “내가 죽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나.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옆에 있는 사람을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직쏘의 게임은 이번에도 피부를 찢고, 뼈를 부러뜨리고, 피를 쏟아내는 화면 구성으로 시각이 느낄 수 있는 잔인성의 극대화를 노렸다. 4편은 열혈 경찰관 닉을 앞세운 ‘살인 게임’이다. 직쏘에게 납치·감금된 동료 경찰관 에릭과 호프만을 구해내는 것이 닉에게 주어진 임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히 90분. 에릭은 대형 얼음 위에 발끝만 살짝 닿은 채로 천장에 목이 매달려 있고, 그 옆 전기 의자에 잡혀있는 호프만은 에릭이 얼음에서 발을 떼면 바로 감전사(感電死)하게 돼있는 상황이다. 끔찍하게 죽어가는 희생자들을 거쳐가는 닉에게 직쏘가 바랐던 것은 ‘그가 보고, 그가 느끼고, 그가 판단했던’ 상황을 이해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범죄자들이 합당한 심판을 받고 스스로 빠져나오길 원했다. 4편에서는 평범한 가장이었던 직쏘가 왜 극단적인 살인을 즐기는 괴물이 됐는지에 관한 설명도 들어있다.

‘쏘우’ 시리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짜릿한 반전도 중간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한다. 전편에 비해 반전의 강도는 다소 약해진 듯하지만, 과거 사건과의 교차 편집 기법 덕에 사건을 하나씩 되짚어 재구성해보는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게임에서 진 것이다. 18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