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樂聖)에게 던지는 거장의 물음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 프로젝트, 그 마지막 결과물인 후기 피아노 소나타집이 출시됐다. 악성(樂聖) 베토벤의 만년을 장식하는 6곡의 후기 소나타에서 백건우는 자신이 경험해 온 지식과 자연스런 감성의 흐름을 섞으면서, 동시에 지금껏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던 흥미로운 실험들을 선보인다.

귀가 들리지 않는 작곡가가 마음의 소리와 관념을 합쳐서 만들었기에, 이 작품들은 본질적으로 많은 물음표를 지니고 있다. 백건우는 이 질문들에 일일이 정답을 붙이는 대신, 또 다른 질문들을 던지며 흥미롭게 해석한다. 느린 템포인 28번 소나타의 1악장이나 ‘칸타빌레(노래하듯이)’ 주법이다. 연주자는 매력적인 31번의 1악장에서 지나치게 나긋나긋한 음상을 배제하고 정확한 리듬과 간소화된 페달 사용으로 개운한 맛을 낸다. ‘최후의 불꽃’이라고 할 수 있는 소나타 32번의 1악장에서는 기존의 공격적인 느낌을 바꾸어, 선율 자체에서 나오는 비장미와 우수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절제미는 세련된 우아함과 더불어 빛을 발한다. 백건우는 29번 ‘함머클라비어’의 3악장이나 31번 마지막 악장의 ‘슬픔의 노래’에서 센티멘털(sentimental)한 감상으로 침잠하기 쉬운 주관을 스스로 다스린다.

전 곡을 지배하는 당당한 박자감은 음반 내내 두드러진다. 유장한 호흡으로 나타나야 할 베토벤의 큰 스케일은 후기 소나타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푸가와 변주곡 형식으로 표현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복잡한 멜로디 구성(푸가)과 캐릭터의 변화무쌍함(변주곡)은 음악의 내용과 기술에서 모두 까다로운 숙제들을 던진다. 하지만 백건우의 자세는 어디에서든 편안하다.

초절적 기교가 요구되는 ‘함머클라비어’ 4악장 푸가와 무한한 공간을 향해 뻗어가는 소나타 32번 2악장 변주곡에서 백건우는 다듬어진 터치와 노련한 프레이징으로 초월과 달관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번 음반에 보통 중기 소나타로 분류되는 27번 소나타가 포함된 것도 작은 흥미거리다. 백건우는 다양한 에스프레시보(표정을 풍부하게)와 화사한 음색을 들려준다. 슈베르트와 초기 낭만파를 예견한 베토벤의 작품을 꿰뚫는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