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1.22 09:06 | 수정 : 2007.11.22 09:06

3대 기악(奇嶽)…청량산 삼경 중 단풍이 으뜸

가을철 단풍명소로 잘 알려진 청량산은 12봉, 12대, 8굴, 4우물로 유명하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에 위치한 도립공원 청량산(淸凉山)은 국립공원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으로 가을이 다가오면 각종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 단풍 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다지 장엄한 산세는 아니지만 연이어 솟은 암봉과 기암절벽이 서로 어우러져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꼽힐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12봉(峰)과 12대(臺), 8굴(窟) 및 4우물(井)로도 유명한 이 산은 본래 수산(水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청량사(淸凉寺) 주변의 산세가 절승을 이루므로 청량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 영천지(榮川誌)의 기록에 따르면 낙타 타 자를 쓴 타자산(駝子山)으로, 이는 곧 청량산에 솟은 연봉들이 낙타의 등과 흡사한 암봉들로 형성된 것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신라시대는 자장, 원효, 의상 등 고승을 비롯해 명필 김생과 최치원이 이 산을 찾아 수도 정진했다. 고려시대에는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친위대를 이끌고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머물던 곳이며, 대문장가 이규보도 찾았다. 조선조에 이르러 이황, 주세붕, 남사고 등 이름 있는 명사들이 이 산을 찾아 학문을 연구하기도 했다.

특히 퇴계 이황은 13세 때 이곳을 찾아 청량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많은 시문을 남기고, 평생을 한결 같이 사랑했다. 영남지방의 오지에 있으면서도 수많은 명사들이 찾던 산으로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청송 주왕산, 영암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寄嶽)으로 알려지기도 한 이 산은 전형적인 바위산이다.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 사암, 이암층이 융기, 풍화, 차별침식 등의 작용으로 다양한 지형이 만들어져 특별한 경관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 송이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 만 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 것이 형용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1)산행은 등산로 곳곳에 설치된 많은 철계단을 오르내리게 된다. 2)‘뾰족하고 빼어난 것이 필(尖秀者爲筆)’이라 했던 탁필봉은 상봉에는 오를 수 없다. 3)청량산의 명당터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산사 음악회로 유명한 절집이다. 4)퇴계 이황은 평생 청량산을 사랑해 수많은 시문을 남겼다. 산 들머리에 서 있는 이황의 시비.
입석바위가 들고 나는 산행기점

‘청량산 3경’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단풍은 청량산의 자부심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청량교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는데 옛날에는 광석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는 곳이다. 한자로 새겨진 ‘도립공원 청량산’ 표지석을 지나 매표소를 뒤로하면 퇴계 선생의 ‘讀書如遊山(독서여유산)’ 시비가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도립공원에 들어섰지만 청량산은 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날씨 탓도 있겠지만 워낙 좁은 면적에 골은 깊고 봉우리들이 빼곡하기 때문일 터이다. 

20분쯤 오르면 길가 오른편에 입석 바위가 있고, 왼편에는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이곳이 청량산의 일반적인 산행기점이다. 산허리를 끼고 완만하게 돌아 오르는 산길은 색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숲속으로 이어진다. 발길에는 비바람에 떨어진 낙엽들로 계절의 변화를 읽을 수 있어 좋다. 10분 정도면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면서 이정표(응진전 0.6km, 20분)가 서있다. 청량사로 이어지는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편 산길로 올라서서 채마밭 사이를 지나면 응진전이다.

절벽의 암봉 아래에 자리 잡은 응진전은 외청량사로,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청량사와 더불어 창건한 암자다. 금탑봉(620m)을 등지고 터를 잡은 건물 앞쪽은 천길 낭떠러지로 절벽을 이룬다. 이 일대의 풍치는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조망 또한 시원해 골짜기 건너편의 축융봉(845.2m)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이곳에 피난 왔을 때 노국공주가 16나한을 모시고 불공을 드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치원암이 있던 풍혈대를 지나면 최치원 선생이 이 물을 마시고 머리가 좋아졌다는 총명수, 다시 걸음을 옮기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다. 일명 고운대라고도 일컫는 이곳은 병풍처럼 펼쳐진 청량산 일대와 청량사를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좋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곧이어 만나는 김생굴은 신라시대 명필 김생이 글씨공부를 했던 곳으로 전설의 현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청량산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산이다.
산행길잡이

○매표소~입석~응진전~경일봉~자소봉~뒤실고개~선학봉~의상봉(정상)~뒤실고개~청량사~매표소 <6시간 소요>
○매표소~선학정~병풍바위~두들마~안부~의상봉(870.4m)~뒤실고개~자소봉~경일봉~안부~김생굴~응진전~입석 <5시간30분 소요>
○매표소~입석~응진전~경일봉~자소봉~연적봉~뒤실고개~청량사~매표소 <3시간30분 소요>
봄가을 건조기 산불예방기간에도 주등산로인 입석~응진전~김생굴~자소봉(2.4km), 입석~경일봉~자소봉(3.1km), 자소봉~탁필봉~연적봉~뒤실고개~청량사 코스는 개방한다.


교통

다시 갈림길에서 오른편 된비알로 30분 정도 올라치면 경일봉에 이르게 된다.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 중간에는 로프가 설치돼 있다. 청량산은 곳곳에 잘 설치된 이정표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므로 길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경일봉(750m)은 ‘아침에 뜨는 해를 경건한 예로 손님을 맞듯이 한다(寅賓旭日)’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상봉에는 표석과 묘지 한 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부터 봉우리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르내림이 심한 등로를 잇게 된다. 경일봉에서 841m봉을 거쳐 자소봉까지는 40분쯤 걸린다. 집채만한 바위봉우리들이 능선을 차지하고 있어 이를 피해 산길이 나 있다. 철계단을 오르내리고, 경사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도 두서너 차례 만난다. 그렇지만 능선 좌우의 바위전망대에서 청량산의 여러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는 구간이다.

수직절벽으로 이루어진 자소봉(845m) 턱밑의 테라스는 전망대다. 이곳에는 표석이 서있고, 40~50명은 너끈히 머물 만한 널찍한 공간에 난간이 둘러져 있다. 북쪽으로 백두대간 능선이, 그 오른쪽으로 일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소봉에서 내려서서 남쪽 절벽 아래로 에돌아 안부로 내려서면 갈림길. 직진의 비탈길로 이어가면 탁필봉에 이른다. ‘뾰족하고 빼어난 것이 필(尖秀者爲筆)’이라 했듯이 봉우리의 또 다른 이름은 문필봉. 바위봉 아래 길섶에 서있는 표석을 지나 곧이어 연적봉을 만난다. 철계단을 올라서면 사방팔방 전망이 툭 트이는 연적봉은 조망은 물론이고 암봉과 어우러진 노송의 조화가 이곳 풍치를 더욱 멋있게 꾸미고 있다.

연적봉에서 고도를 낮추면 안부 갈림길인 연적고개에 닿고, 다시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 조심스레 철계단을 내려서면 청량사 갈림길인 뒤실고개다. 이곳에서 청량산 상봉인 의상봉(장인봉)까지는 1.2km 거리지만, 산길은 생각과는 달리 만만치 않은 난코스로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남쪽 산비탈의 등산로를 따라 청량사까지는 0.6km로 30분이면 내려갈 수 있다.

능선을 따라 직진하여 갈림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건너편에 선학봉이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로프가 설치된 바위협곡은 급경사 내리막으로 철계단이 이어지면서 곧장 이정표(의상봉 0.6km, 자소봉 1.3km)가 서있는 선학정 삼거리에 이른다. 선학봉을 눈앞에 두고 왼편으로 우회하여 오르는 길은 로프와 파이프 계단이 설치된 바위협곡이다. 선학봉은 마치 학이 공중으로 솟구쳐 날아오르는 듯해서 붙은 이름.

이제 조그만 암릉 몇 개를 지나면 장인고개(통제소 1.5km, 자소봉 1.6km, 의상봉 0.3km)에 다다른다. 정상은 이 안부에서 조금 내려갔다가 철계단으로 오르게 되는데, 청량산 최고봉으로 의상봉, 또는 장인봉으로 부른다. 정상에는 돌탑(케언)과 삼각점, 정상표지석, 등산안내판이 설치돼 있는 넓은 공터지만 숲에 가려 조망은 시원찮은 편이다.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의상대와 그가 기거하던 의상굴이 있어 의상봉으로 불린다는 이곳에서 서쪽 숲길로 조금 나아가면 철난간이 쳐진 멋진 전망대가 있다.

정상에서 두들마로 내려가는 길은 통제구간으로 뒤실고개까지 1시간여를 되돌아가야 한다. 청량산에 들러 청량사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뒤실고개에서 청량사까지는 30분이면 넉넉하게 닿을 수 있다. 청량사로 내려서면 오른편 연화봉과 왼편 경일봉이 색색의 단풍으로 불타고 있다. 흡사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이 아름답다. 흔히 ‘청량산 3경’을 얘기한다면 달빛과 설경, 그리고 단풍이 그것인데, 단풍은 3경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청량산의 자부심이다.

청량사는 매년 가을이면 열리는 산사 음악회로 잘 알려진 절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법당인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도유형문화재 제47호다. 이곳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불은 지불(紙佛)이고, 유리보전(琉璃寶殿)이라는 편액은 공민왕의 친필로 전해진다.

청량산의 진가를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절집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출발지까지는 20분이면 닿는다. 관리사무소 옆에 자리한 청량산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지난 3월 문화재청은 청량산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23호로 지정했다.


/ 글 사진 황계복 부산시산악연맹 부회장

청량산은 봉화군에 소재하고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안동을 기점으로 잡는 것이 편리하다. 안동 시외버스터미널(054-857-8298) 옆에서 북곡행(청량사) 시내버스 1일 6회 왕복 운행. 봉화 시외버스터미널(054-673-4400)에서도 청량산행 군내버스가 1일 6회 운행.
서울→안동 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 ARS)에서 20분 간격(06:00~19:40) 운행.
부산→안동 노포동 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1일 12회(07:00~19:30) 운행.
대구→안동 북부정류장(053-357-1851~2)에서 30~40분 간격(06:10~22:15) 운행.
안동→북곡(청량사) 시외버스터미널 옆(교보생명 앞)에서 시내버스 67번이 1일 6회(05:00,   08:50, 09:50, 11:50, 14:50, 17:50) 운행.

숙식(지역번호는 054)

안동시내와 봉화읍에는 다양한 숙박시설과 식당들도 많지만, 청량산 인근에는 호텔이나 여관은 없고 민박은 가능하다. 이곳은 대다수가 민박과 식당을 겸하고 있어 한꺼번에 숙식 해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청량산휴게소(672-1447), 청량산식당(673-2560), 청하식당(672-1385), 맛고을식당(673-8845) 등이 있다.
청량산과 가까운 봉화군 봉성면은 돼지고기 숯불구이로 유명한 곳. 두툼한 고기를 소나무 숯불 위에 석쇠로 구워 기름이 빠진 고기에 솔향기가 스며들어 맛이 아주 담백하다. 두리봉식육식당(673-9037), 봉성숯불식당(054-672-9130) 등 20여 곳이 있다. 청량산 관리사무소(679-6321~2)에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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