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8년 만의 도쿄

〈제1보〉(1~16)=이틀 전 밤 도착 때만 해도 비를 뿌리던 도쿄 하늘이, 8강전이 시작된 12일 아침엔 거짓말처럼 갰다.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청징(淸澄)한 창공에서 쏟아지는 맑은 가을 햇살을 받아 일본기원 건물이 반짝반짝 빛난다. 따져보니 99년 제4회 대회 8강전 이후 꼭 8년 만이다. 일본 기사들의 조기 탈락이 잦아지면서 이곳은 국제 바둑행사의 ‘변방’이 돼버렸었다. 한국 4, 중국 2, 일본 2명의 청년들이 차례로 입장해 자리에 앉는다.

중국 류징(劉菁)이 백 돌을 한 움큼 쥐자 한상훈이 흑 돌 하나를 판 위에 놓았다. 홀수면 흑을 잡겠다는 선포. 그러나 틀렸다. 백 돌은 짝수였고, 선택권을 잡은 류징이 흑 돌 통을 당겨간다. 한상훈의 입가에 흐르는 뜻 모를 미소. 이 19세 소년은 언제나 백을 선호한다. 뭔가 상서로운 조짐이었을까.

한상훈의 또 다른 특징은 포석을 주도하기보다 따라가는 형이란 점이다. 뚜벅뚜벅, 흑이 하자는 대로 하다 보니 15까지 전형적 ‘포석 교과서’가 놓였다. 도중 12로는 참고도의 반발도 있지만 이 소년은 간명한 길을 택했다. 16으로 ‘가’는 흑 16, 백 ‘나’ 때 흑 ‘다’가 워낙 좋아 요즘은 이렇게 많이 둔다. 흑의 다음 한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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