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이창호 과(科)

〈제2보〉(16~30)=한상훈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88년 태어난 ‘오륜(五輪)동이’다. 나이나 신분, 이력 따위가 승부사회에선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그는 올 한 해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데뷔 1년 차 초단인 이 10대 소년 앞에 국내외 뭇 고단(高段), 준걸들이 차례로 스러져 갔다. ‘질서’란 미명 아래 일사불란하게 엮인 다른 분야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는 일체의 허상을 깨부순 혁신의 기수(旗手)다.

20에서도 한상훈의 견고한 기풍이 드러난다. 조훈현이나 이세돌이었다면 아마도 ‘가’로 욕심사납게(?) 벌린 뒤 한바탕 싸움을 유도했을 것이다.

한상훈이 두텁게 힘을 비축한 뒤 차곡차곡 실속을 챙기는 ‘이창호 과(科)’란 분류도 그래서 나왔다. 21 붙임도 요즘 유행하는 수. 과거엔 ‘나’가 유일무이한 ‘정답’으로 통했었다.

25까지는 일방통행적 진행. 26으로 27에 내려빠지는 것은 지금은 무리다. 참고도 10까지를 예상할 때 흑 ▲가 너무도 좋은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 28은 30에 앞서 먼저 이렇게 밀어놓는 게 옳은 수순이다.

29로 2단 젖히고 30에 빠져 ‘최신판’이 완성됐다. 불변일 것 같던 귀의 정석도 시대에 따라 끝없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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