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화전(和戰)의 기로

〈제4보〉(49~65)=단정한 자세로 대국 중인 한상훈의 정장 차림이 눈길을 끈다. 격렬한 바둑 승부에서 넥타이까지 매고 나오는 ‘선수’는 흔치 않다. 10회 때 준우승했던 중국 천야오예(陳耀燁)가 생각난다. 매번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출전하던 그는 ‘18세가 될 때까지는 양복을 안 입겠다”는 소신(?)을 밝히곤 했었다. 둘은 불과 한 살 차이.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년배들끼리도 개성은 이렇게 다르다.

흑의 실리와 백의 두터움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국면. 백 △의 특공대가 투입되면서 바둑은 돌연 전투 모드로 전환된다. 50으로 뛰었을 때 흑은 기로를 맞았다. 공격을 택하려면 53 자리에 두어 퇴로를 막아야 하는데, 참고도 2를 당해 앞길이 험난하다. 14까지는 예상되는 변화 중 하나.

23분의 고심 끝에 51로 ‘화평책’을 택했는데, 그러나 인내는 오래가지 않았다. 53이 조급한 차단. ‘가’로 백 ‘나’를 강요한 뒤 ‘다’로 하변을 챙겨놓고 53을 노리는 여유로운 착상이 바람직했다. 53의 절단 유혹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지만 결과가 나빴다. 어쨌든 백은 고립된 중앙 말을 타개할 차례. 64까지 이런 정도였는데, 65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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