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피하지 못한 신파의 함정

신기하게도 괴리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지난 3월 개봉한 ‘좋지 아니한가’에서 화장기 없는 얼굴에 대충 티셔츠 ‘쪼가리’를 걸친 모습을 봐 충격 감도가 심하게 낮아진 면도 없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푹 꺼진 볼에 다크 서클, 핏기 없는 입술은 물론, 왠지 ‘타짜’ 정마담이 연상되는 고스톱 포즈의 식사 장면 모두 그냥 현실 속 김혜수 같았다. 그만큼 29일 개봉한 ‘열한번째 엄마’의 ‘엄마’ 모습과 그녀가 많은 부분에서 겹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혜수의 리얼한 외모 변신이 뒤받쳐 주기엔, 너무 눈물을 짜내려 한 이야기 전개가 아쉽기만 하다. 영화진흥위원회 극본 공모 당선작으로 밑바닥 인생을 산 여자와 가난 속에서도 꿋꿋이 사는 소년의 애증과 이해, 사랑을 담았지만, 자칫하면 신파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 굴레에서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듯하다. TV 인간 극장이었다면 전 국민의 눈물을 쏙 빼며 그 다음 날 온갖 뉴스를 장식했을 텐데, 그것이 대형 스크린으로 옮겨진다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거는 기대감은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집창촌 출신으로 온갖 병을 숨기고 살아온 그녀(김혜수)는 여자를 싼값에 사 다른 술집으로 팔아버리는 일을 하고 사는 남자(류승룡)의 손에 이끌려 봉천동 구석에 온다. 아들 재수(김영찬)는 너무나 손쉽게도 ‘엄마’라고 말하지만, 절대 그녀를 엄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구르트 하나도 그 둘에겐 분쟁의 조건이 된다. 그 둘의 접점은 역시 ‘엄마’다. 재수는 네 살 때 죽은 엄마 얘기를,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자길 버린 엄마 얘기를 하면서 감정의 벽을 조금씩 허문다. “엄마가 제일 불쌍하고 내가 두 번째야”라고 웃는 재수의 얼굴에서 둘의 희망과 절망이 조금씩 교차한다. 폭력적인 백수 사기꾼 남편을 완벽하게 그린 류승룡의 연기와 아역배우 김영찬의 눈빛 덕에 낮은 수준의 신파로 끝날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