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토끼의 과속

〈제5보〉(65~77)=류징의 별명은 ‘토끼’란다. 75년생으로 토끼띠인데다 승부처에 이르렀을 때의 예민한 후각과 민첩한 동작이 토끼를 빼 닮아 동료들이 붙여주었다는 설명.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이창호를 비롯해 양건 최명훈 윤성현 이상훈 등 같은 75년생 토끼띠가 ‘바둑계 최고의 성골’ 그룹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덧 중견의 대열에 합류한 중국산 토끼 류징의 주력(走力)이 시험대에 올랐다.

65로 마늘모해 흑은 외곽을 틀어 막았고 백은 짭짤한 집을 챙겼다. 흑이 이게 싫다면 ‘가’로 둘 수 있어야 하는데, 참고도 4까지 탈출이 있어 불만이다. 앞서 ▲로 나와 끊은 체면을 살리려면 흑도 이제 좌중앙 일대 백 대마를 효율적으로 공격해야만 할 입장. 69는 그 첫 포문이자 공격의 맥점이다.

71로 백 72를 강요한 뒤 73으로 밀어 대오를 정비한다. 74도 절대의 한 수. 뒤이어 75로 한 칸 뛰자 얼핏 백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듯한 형태가 나오고 있다. 76도 곤궁해 보이는 탈출인데, 하지만 이 장면에선 최선의 행마였다는 칭찬이 나왔다. 77이 문제수. 이후 흑이 고전하는 원인이 됐다. 토끼의 오버런(overrun). 어떻게 두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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