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로서 롱런하려면… ”

“두 한국인 성악가를 동시에 주역으로 캐스팅한 것은 결코 국적이나 인종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그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설 만한 기량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세계 오페라의 1번지’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피터 겔브 총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테너 김우경과 소프라노 홍혜경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베르디)에서 알프레도와 비올레타로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메트 127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성악가들이 동시에 남녀 주인공 역할을 맡는 순간이었다.

그의 말이 과장이나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것이 대서양 건너편에서 다시 입증됐다. 영국 런던의 최고 명문 오페라 극장인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 두 성악가를 내년 9월 개막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이다.

소프라노 홍혜경은 본지 단독 인터뷰에서 “내년 9월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라 보엠’의 여자 주인공 미미를 부를 예정이며, 남자 주인공 로돌포 역은 테너 김우경씨가 맡게 된다”고 밝혔다.

홍혜경은 1984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에 출연한 뒤,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뉴욕 메트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해왔다. 모든 소프라노가 꿈꾸는 배역인 비올레타(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도 데뷔 20년을 넘기고서 도전할 정도로 차근차근 레퍼토리를 넓혀온 가수로 정평이 나있다.

홍혜경은 “성악가로서 일단 경력을 쌓기 시작하면 주변에서 출연 요청이나 유혹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무대에서 롱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노(No)’라고 거절하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틀과 뉴 미디어 시대를 맞아 메트에서도 성악가 사이의 경쟁이나 구조 조정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홍혜경은 “성악가가 가만히 서서 노래만 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젊고 잘 생기고 연기도 잘하면서 몸매까지 좋은 성악가가 환영 받는다. 여기저기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에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테너 김우경은 2004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뒤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과 메트 등에 서왔다. 그는 한양대 음대 시절, 하루에 티셔츠를 6장씩 들고 가서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연습한 ‘노력형 테너’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홍혜경은 성악 후배인 김우경에 대해 “음악에 대해 진지함을 잃지 않고 항상 노력하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홍혜경은 오는 1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성가곡 콘서트를 위해 내한할 예정이다. 공연 문의 (02)2650-7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