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순식간의 참극

〈제6보〉(77~90)=시대가 좋아 대국실에 여럿이 펼쳐놓은 컴퓨터 화면에도 대국 실황이 중계되고 있다. 그 중 네티즌 예상승률에 눈이 머문다. 사이버 머니가 걸린 접속자들 간의 베팅이다. 한상훈 54%, 류징 46%. 놀랍게도 그들은 한국 신참 초단의 승리를 내다보고 있다. 이들의 ‘안목’은 너무도 정확해 뒤집히는 적이 거의 없다. 오늘도 과연 적중할 수 있을까.

77은 기세의 한 수였으나 초점을 벗어났다. 무조건 참고도 1로 뻗을 장면. 백은 2 정도인데, 흑 3 한 방으로 주도권은 흑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흑은 멀리서 A의 침입도 노리고 있다. 78로 단수치고 80으로 키워 죽이는 것이 백이 노렸던 타개 수단. 81로 끊을 수밖에 없을 때 82의 끼움이 예상했던 이상으로 통렬했다.

84까지 패(覇)가 됐다. 86이 절호의 팻감. 89로 굴복하자 또 한번 90으로 단수친다. 마치 점잖게 웅크리고 있다가 돌연 발톱을 세우고 몰아치는 맹수를 보는 것 같다. 흑은 이 패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과연 어디에 팻감이 있나. 눈 깜짝할 새 바둑이 이상해졌다. 모든 게 77의 죄였다. (8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