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한 길을 걸어온 그들…

미술시장이 워낙 떠들썩 하다 보니, 시장에서 돋보이는 작가들이 전시장도 주름 잡는다. 어디에선가는 시장에 드러나지 않은 작가들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한다면 요즘 서울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하는 ‘작가 재조명전: 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1월 6일까지·02-425-1077)에 가보면 된다. 30년 이상 작품에 매진한 중견·원로 작가 3명을 골라, 그들이 파묻혀 생활하는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에 작품 일체를 진열했다.

강화도에 사는 김주호(58)의 작업실은 장난감 같은 인물 조각들로 가득 찼다. 비례가 맞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소박하고 해학적이다. 다리가 짧고 뭉툭한 남자가 양팔을 둥글게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든다. “쉽고 재미가 나야 오래 작업 할 수 있지”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그 ‘쉬운 모양’ 속에 현대인들의 수만 가지 표정이 다 들어 있다.

박한진(69)의 이천 작업실은 고철 잔해들을 붙여 만든 설치작품에서 옛날 달력에 먹으로 그린 드로잉까지, 전혀 다른 경향의 작품들이 섞여 있다. “왜 폐품이냐”고 묻자, 작가는 “내가 끌리고, 내가 좋으니까” 한다. 하지만 작가가 고철 덩어리 속에 담은 의미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물건이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순환하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손성진 소마미술관 큐레이터는 “박한진 작품에는 유행을 타지 않는 조형미가 있다”고 했다.

군산에서 작업하는 이건용(65)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우리나라 ‘개념미술’의 대표적 작가다. 선 채로 제자리에서 벽에 자유분방하게 붓을 놀리는 ‘신체드로잉’ 시리즈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됐다. 이 전시를 기획한 김태호 소마미술관 명예관장(서울여대 교수)은 “유행을 타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 세계를 고집해온 작가들을 찾았다. 그들의 작업실을 재현한 것은 한 작가가 어떤 태도로 작품세계에 임해왔는지 보여주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작가의 땀이 묻은 작업실을 간접적으로 엿보는 재미를 이 전시에는 덤으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