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인기 안부러울 ‘연말 오페라’ 떴다

“왜들 그렇게 이상하게 날 쳐다보는 거야?”

연인 미미가 숨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로돌포는 이렇게 절규한다. “미미, 미미.”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외쳐 부르지만, 친구들은 고개 숙여 탄식할 뿐이다. 비극적 결말에 객석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공연장을 나설 무렵, 밤 하늘에 하얀 눈이 쏟아져 내렸다. 두 연인이 “꽃피는 봄에 우리 헤어져요”라고 입 맞춰 노래할 때 떨어져 내리던 3막의 그 눈가루와 꼭 닮았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부러워하던 국내 오페라계가 푸치니의 ‘라 보엠’을 연말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오페라극장 복도 한복판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았고, 막이 오르기 전의 무대에는 ‘라 보엠’이라고 쓴 붉은 네온 사인이 번쩍이며 연말 분위기를 극장 안까지 끌고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라는 걸 감안한 장치들이다.

사랑이 꽃피는 1막과 그 사랑이 지는 마지막 4막의 무대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터인 다락방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내보이기 쉽지 않기에, 연출가들에게는 까다로운 숙제를 안기는 대목이다. 연출가 울리세 산티키는 휠체어와 같은 소도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등장 인물들의 아기자기한 동선(動線)을 빚어냈다.

연말의 북적거리는 파리의 카페 거리를 담아낸 2막 첫 장면에서는 모든 등장 인물이 마네킹처럼 멈춰 서있었다. 정지 화면에 플레이 버튼을 누르듯이, 막이 올라가면서 화려한 빛과 함께 모두 동작을 시작하는 착상이 인상적이었다. 2막에서 무대를 수평적으로 구성했다면, 3막에서는 수직적으로 짜가면서 서로 대구를 맞췄다.

1막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부터 로돌포 역의 테너 신동호는 맑고 청아한 톤의 고음(高音)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을 보여줬다. 마르첼로 역의 바리톤 오승용도 빼어난 성량과 다소 과장을 섞은 역동적인 연기로 무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막에서 파리의 시민들을 휘어잡아야 하는 무제타 역의 소프라노 오미선은 질투심과 허영, 간드러짐과 괄괄함 등 다채로운 감정을 보다 자연스럽게 담아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전체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집어넣기보다는 탄탄한 기본기에 집중한 무대였다. 오페라의 흐름에 따라 웃고 우는 관객들의 표정에서 ‘연말 인기 오페라’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줄리안 코바체프가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는 강약의 조절을 통해 풍부하게 표정을 살려나갔지만, 과다한 템포 조절로 자칫 성악가들과의 호흡이 흐트러질 뻔했다.

1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0일 공연 없음. (02)586-5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