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 위에 앉아 자신의 가치를 명상하라”

설치작가 전수천(60·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2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 간다. 그는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유명 작가지만, 2005년 가을 미국대륙을 뉴욕에서 LA까지 열차로 횡단하는 프로젝트인 ‘움직이는 드로잉’이 별 주목을 받지 못한 뒤 내내 아쉬워해왔다.

이번엔 뉴욕 첼시의 비영리 전시장인 ‘화이트 박스’ 갤러리에서 초청전 ‘바코드로 읽다(Reading Beyond Bar Codes)’를 1월 22일~2월 23일 연다. ‘움직이는 드로잉’은 흰 천을 덮은 15량 열차로 미국 대륙 5500㎞를 횡단했던 대형 작업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엔 작은 갤러리 하나를 채우는 소박한 전시다. ‘선(線)’을 가지고 논다는 점은 같다. 그땐 미국 대륙 위에 열차로 흰 선을 긋는 야심만만 프로젝트였다면, 이번엔 전시장 바닥에 바코드 모양의 마루를 깔고 그 위에 다시 바코드 무늬의 방석을 놓아 관객이 앉아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색적 프로젝트다. 왜 바코드인가에 대한 그의 설명은 난해했다.

“우리는 매일매일 바코드의 간극이라는 미묘한 영역에서 우리 스스로가 컨트롤되면서 살고 있습니다.”

몇 번을 거듭 물으며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 했더니, “바코드 위에 가만 앉아서 내가 어느 정도 밸류(value)의 삶을 사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바코드를 눈에 보이는 사물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영역의 값까지 읽어내는 도구로 본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개념적, 실험적인 그의 작품이 잘 팔리지는 않는다. 이번에 들고 가는 또 다른 작품은 대형 지구본 위에 폐품을 덕지덕지 붙인 지름 1.7m짜리 설치물 ‘사물에서 상상을 읽다’다. 아시아 부분에는 전자부품을, 미국 부분에는 플라스틱 권총 등을 붙여 커다란 장난감 같다. 그 나라, 하면 떠오르는 인상을 유희적으로 표현했다.

“저는 돈과 관계가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가장 돈과 관계가 있는 작가예요.” 전수천은 “팔리지도 않을 작품인데 한번 전시하는 데 제작·운송·실행 비용이 수억 원 들어간다”고 말했다. ‘움직이는 드로잉’은 10억 원 가까이 들었다. 기차라는 흰 선이 미국 대륙을 7박8일 동안 달리고, 열차 안에서는 여행 기간 내내 문화예술인들이 담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현지 언론에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지원금이 늦게 나와서 기차 출발 사흘 전에야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했거든요. 그래서 현지 언론이 동승취재하기 어려웠어요. 기업 협찬금도 펑크가 나서 집을 저당 잡혀 큰 빚을 졌고요.” 그때 일은 아직도 전수천에게 상처처럼 남은 듯했다.

하지만 관객에게 충격도 주고 논란거리도 주면서, 전수천은 여전히 주목의 대상이다. “대중과 소통이 더 잘됐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요즘처럼 상업성이 짙은 우리 현대미술계에서 상업성을 배제한 채 실험적 작품에 매진하는 대표적 작가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미술평론가 윤범모(경원대 교수)씨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