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백 4집 반 승

〈제12보〉(183~204)=한상훈을 차갑고 메마른 승부사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꿈 많은 19세 소년답게 스포츠와 음악을 즐긴다. 특히 농구스타 양동근과 ‘러브홀릭’이란 이름의 여성보컬의 열렬한 팬. 그러나 여자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관심 없다”는 투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볼에 살이 통통하다고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은 ‘불독’.

183은 비록 잡힐 돌이지만 일단 이렇게 이어놓고 188을 강요하는 게 요령이다. 훗날 204 의 젖힘도 끝내기가 된다. 197을 허용해 ? 한 점을 죽인 196은 실수 아닐까. 하지만 참고도는 2 이하 6까지의 역습을 당해 백의 손해다. 201까지 아낌없이 조인 뒤 선수를 뽑아 202를 거쳐 204. 검토하던 최규병 九단이 “한상훈의 끝내기는 확실히 세다”며 감탄한다.

이 바둑은 246수까지 이어졌고 계가 결과 흑의 2집 승, 덤을 제하고 백이 4집 반을 이겼다. 204수 이후는 잔 끝내기에 불과하므로 총보로 넘긴다. 입단 1년 차 햇병아리 초단이 일약 세계 4강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10여분 간의 복기(復棋). 말도 통하지 않는 승자와 패자가 마주앉아 소감을 나누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신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