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녀들은 영화에 ‘순정’을 바칠까

“요 며칠 스케줄이 빡빡해서요. 아침엔 목이 너무 잠겨서 걱정했어요.”

지난주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김태희는 목소리에 감기를 잔뜩 담고 있었다. “사실 저보다는 매니저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봤다. 그의 눈 주위는 거뭇거뭇하다. 뭐라 묻기도 전에 “저 요즘 아주 죽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영화도 다 찍어놓고선 뭐가 바쁘다는 걸까…’라는 의문에 대해선 며칠 뒤 TV가 해답을 줬다. 아침에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에게 우유를 먹이더니 점심에는 외국인들에게 밥을 퍼다 나르고, 저녁이 되니 “순대 아니죠. 순태 맞습니다”를 외치고 있었다. CF에서처럼 방긋방긋 웃으면서 말이다.

평소 CF를 제외하곤 TV에서 거의 만나기 힘들었던 ‘비싼’ 그녀가 며칠 동안이나 공중파 모습을 드러내는 ‘봉사’를 했다. 그것도 ‘인형’ 같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코미디에까지 기꺼이 몸을 던지면서 말이다.

비단 그녀뿐이랴. 요즘 각종 토크쇼 초대 손님을 보면 ‘아, 곧 무슨 영화가 개봉하겠구나’를 알 수 있다. 한예슬(용의주도 미스신)은 남자 진행자들의 애원(?)에 코맹맹이 소리로 “오빠~”를 날려줬고, 이미연(어깨너머의 연인)은 “잃어버린 10대”를 언급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미국 드라마 출연 중이라 하와이에서 날아온 김윤진(세븐데이즈)은 스케줄을 쪼개느라 새벽까지 녹화하는 ‘투혼’을 발휘해주기도 했다.

‘뭐야 또 영화 홍보야~!’라며 눈살을 찌푸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꾸로 ‘영화’ 덕분에 그들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평소에 그렇게도 ‘바쁘신’ 그들을 TV 속으로 불러들이는 건 영화 이외에 어느 문화 콘텐츠도 해내기 힘든 일이다. 최근엔 계약서를 쓸 때부터 아예 ‘오락프로 몇 회 출연’ 등 홍보 여부에 관한 내용을 지정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홍보를 위해 이렇게까지 나서고 있지만, 영화 출연 자체가 그들의 이미지를 높여주는 것 같진 않다. 단적으로 ‘CF 효과’ 면에서 최고로 꼽히는 김태희의 경우 영화에서만큼은 흥행 보장이 안 된다. 그렇다고 영화가 그들에게 그만한 보상을 주고 있을까? 시간 대비 가격으로 보면 스타들에게 영화의 단가는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CF는 단 며칠만 고생하면 되는데, 영화는 몇 달 넘게 투자해야 하니까. 그로 얻는 수입은 비슷비슷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스타들은 영화를 원한다. 진정한 ‘배우 이미지’가 영화로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일 테다. 예전에 만난 송혜교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나이대가 비슷한 누군가”라고만 칭하며 “그 친구가 너무 부럽고 질투나요. 영화만 찍어도 괜찮잖아요. 전 ‘배우적 이미지’가 부족해요”라고.

하지만 이조차도 그들의 ‘포장’ 아닐까. 영화가 계속 실패한다면, CF 주가 하락은 당연한 거니까. 영화는 중도 포기하고 싶어도 ‘배우 생명’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그런 딜레마 덩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