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명품 브랜드 구치 가문의‘피묻은 역사’영화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주목한 인물 ‘마우리치오’의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마우리치오는 로돌포의 아들이다. ‘신흥 부호’로 자리잡은 구치 가문에서 얌전한 소년으로 자랐던 그는 1972년 돌연 집안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가난한 세탁소집 출신 처녀 파트리치아 레지아니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마우리치오의 난데없는 반항에 구치 집안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마우리치오는 파트리치아와 결혼한 후, 사업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해 결국 구치 브랜드 전체를 장악하는 회장이 된다.

그러나 알도의 아들 파올로(Paolo)는 마우리치오의 ‘독점’을 가만 두고 보지 못했다. 회사의 경영권을 놓고 아버지 알도와도 번번이 마찰을 빚다가 아버지를 탈세 혐의로 감옥에 보내려 한 것은 유명한 사연. 그는 마우리치오와도 지독한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회사를 확대하겠다는 욕심으로, 직접 제품을 만들지 않고 로고만 빌려주는 ‘라이선스 제품’을 남발하다 구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도 했다.

마우리치오의 아내 파트리치아도 회사 경영권에 욕심을 냈다. ‘구치 가(家) 사람들’의 저자 사라 게이 포든은 자신의 책에 ‘마우리치오 구치와 그의 아내는 결혼 후 12년간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마우리치오가 점점 아내의 사업 조언 대신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시작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라고 썼다. 두 사람은 결국 1985년에 이혼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서로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헤어졌다.

부부와 형제끼리의 다툼이 계속되면서, 구치는 무너져갔다. 구치의 소유권 절반 가량이 1988년 아랍 국가 바레인의 투자기업 ‘인베스트코프(Investcorp)’에 넘어갔다.

마우리치오는 재기를 시도한다. 1990년 부회장을 맡고 있던 돈 멜로와 함께 2만 개에 달하던 라이선스 제품을 5000개로 줄이고, 가장 인기 있는 제품에 집중하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전설적인 미국 디자이너 톰 포드를 영입해, 변신을 시도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새로운 사무실을 차린 그는 새로운 성공에 의기양양한 나머지 재혼을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 소식에 전처 파트리치아는 독을 품고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1995년 3월27일 월요일, 오전 8시 30분쯤 회사로 출근하는 마우리치오를 향해 괴한이 네 발의 총을 쏘았다. 시신은 청소부가 발견했다. “남편을 죽이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던 파트리치아는 곧 기소됐고, 그의 사주를 받았다는 시칠리아의 불량배들도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변호사는 “파트리치아가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이성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녀는 29년간의 옥살이를 선고 받았다.

구치 가문의 몰락과 관계없이, 브랜드 ‘구치’는 자손들의 손에서 벗어나면서 극적으로 회생했다. 구치는 1995년 기업공개를 성황리에 마쳤고, 1999년엔 프랑스 ‘이브생로랑’의 향수·화장품 부문을, 2000년엔 프랑스 보석 브랜드 ‘부셰론’을 합병하면서 ‘구치 그룹’으로 거듭났다. 마우리치오의 비극적인 죽음은 곧 잊혀졌고, 구치는 다시 전설이 됐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구치 가문의 흥망성쇠와 그 뒷얘기를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을까. 한때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이 소재를 탐냈고, 이탈리아의 한 방송국은 TV 드라마로 만들려고 했지만, 구치 가문의 강한 반발로 실패했다는 소문을 참고한다면, 답은 아직은 ‘글쎄’다.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구치(Gucci) 가문의 피묻은 역사가 영화로 만들어질까.

미국의 영화 전문 잡지 ‘버라이어티’는 지난 3일 ‘글래디에이터’, ‘블레이드 러너’로 유명한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69)이 구치 가문의 일대기를 곧 영화로 만들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구치 가문은 이에 “이건 분명 우리를 공격하려고 만드는 영화”라며 “영화 제작을 그만두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구치 가문에 어떤 숨겨진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자손들의 ‘예민한 반응’엔 이유가 있다. 숱한 ‘구치 집안의 사람들’ 중에서도 리들리 스콧 감독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 다름 아닌 1995년 총격으로 사망한 마우리치오 구치(Maurizio Gucci)이기 때문. 그를 살해한 장본인은 전처 파트리치아 레지아니(Patrizia Reggiani)로, 아직까지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다. 한때 구치 가문에게 ‘패션계의 마피아’라는 고약한 별명까지 안겨준 사건인 만큼, 자손들은 이 이야기가 새삼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구치 가문의 ‘혈투’는 뿌리가 깊다. 창립자인 구치오 구치(Guccio Gucci)는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인물. 사보이 호텔의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지배인까지 올라갔으나, 39세가 되던 1923년에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구(馬具)를 만들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죽제품 가게를 열었다. 그가 만드는 승마용 제품은 큰 인기를 끌었고, 네 아들 알도(Aldo), 우고(Ugo), 바스코(Basco), 로돌포(Rodolfo)가 로마나 밀라노에 새로운 가게를 내면서 가업(家業)의 규모도 크게 확대됐다.

1953년은 구치 역사의 새로운 ‘부흥점’으로 기억될 만하다. 아들 알도와 로돌포가 미국시장의 잠재력을 읽고, 뉴욕에 가게를 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애용했다는 ‘재키 백’ 같은 제품이 크게 히트했고, 런던·파리·베벌리힐스·도쿄 등 전 세계로 매장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로고 ‘GG’는 명품의 상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