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낙엽 한 잎

〈제3보〉(36~58)=일본기원 직원 하나가 “장쉬 때문에 죽을 맛”이라며 웃는다. 거의 모든 기전에 다 올라 있어 대국일정 잡기가 퍼즐 풀듯 힘들다는 것. 한국기원 관계자들이 이세돌의 빽빽한 일정을 놓고 비명을 지르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당시(11월 중순) 장쉬가 소화한 올해 판 수는 총 67국으로 한국에 비하면 30국 가량 적지만, 이틀제 바둑 등 일본의 제한시간이 훨씬 긴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강행군이다. 36으로 근거 마련에 나섰을 때 이세돌은 37에 붙여 두터움을 택했다. 물론 참고 1도 1 이하로 실리를 챙기며 상대를 몰아갈 수도 있다. 43까지가 흑의 구상이었는데, 국후 이세돌은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九단은 동료들 사이에서 ‘약간 비관파’로 분류된다. 44부터 57까지는 지극히 고전적인 기본 정석. 중앙을 의식한다면 44로는 참고 2도 1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흑도 2에 붙여 거꾸로 중앙 지배에 나설 것이다. 그런 뒤 58이 놓였다. 창공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한 잎 낙엽을 보는 느낌이랄까. 이런 장면에선 정답이란 없다. 힘과 지혜의 전면전이 임박했다. 폭풍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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