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기질론(氣質論)

〈제5보〉(73~85)=장쉬는 올해 4월 중순부터 7월 초순까지 약 80일 사이 무려 17연승을 기록했다.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한 무적의 행진이었다. 하지만 연승이라면 이세돌도 할 말이 있다. 5월 13일부터 7월 3일까지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자그마치 24연승을 달렸기 때문. 두 기사 모두 이 바둑 직전 자국 명인 타이틀을 쟁취한 것도 공교롭다. 충천하는 기세가 정면 충돌한 마당에 바둑이 평온할 리 있겠는가.

흑이 73을 선택하는 데는 단 4분여가 소요됐다. 참고도 1로 우변을 살리는 수는 어땠을까. 이것도 훌륭한 대안(代案)이었다. 우변이 이렇게 크게 사는데 흑이 나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중원의 주도권은 반대로 백에게 돌아간다. 중앙 백 3점을 위협해 이득을 챙기려던 전략도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평화협정(?)은 이세돌의 기질에 안 맞는다. 76까지 우변 흑 2점을 ‘투자’하고 77로 씌워 공격하는 쪽이 이세돌답다. 백은 우변을 삼킨 대가로 중원 타개에 골머리를 썩일 차례. 78은 안형(眼形)을 모색하는 신축적 수습책이지만 흑은 81로 슬쩍 민 뒤 83을 선수하고 85에 붙였다. 강력한 태클이다. 백의 다음 한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