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빗나간 조준

〈제8보〉(124~143)=124가 ‘패착 2호’. 흑이 133에 두어 패를 걸어올 경우 우하귀 팻감으로 감당하겠다는 뜻인데, 의도는 그럴 듯 했으나 그만 오조준(誤照準)이 돼 버렸다. 127까지 우하귀 흑의 형태엔 단 하나의 팻감도 남지 않았다. 124로는 참고도 1이 정답. 그랬으면 2 이후 A 등 많은 팻감을 담보 삼아 백 3으로 우중앙 흑에 대한 역습도 가능했을 것이다.

백은 130으로라도 133에 두어 참아야 했고 그랬더라면 여전히 만만치 않은 형세였다. 129, 131의 팻감 공작 후 흑이 133을 결행해왔을 때 우하귀에 팻감이 없다는 게 비극. 꿩 대신 닭으로 138, 140을 취했지만 누가 봐도 흑의 대득이다. 게다가 선수여서 141까지 때려선 흑이 횡재한 꼴. 검토하던 김인 단장이 “백이 얼마 못 버티겠네” 하며 웃는다.

142는 안방을 빼앗기고 내쫓긴 원주민의 몰골이다. 그러나 한판 바둑의 승패가 결정되기까지엔 숱한 곡절을 거치게 마련. 이 판도 아직 여러 드라마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143이 달리던 준마를 쓰러뜨린 돌부리 같은 수. 여기서 바둑은 다시 급전직하, 알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든다. (13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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