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전’은 스타 등용문!

기전(棋戰)에도 거역 못할 징크스가 있다. 지난주 원성진(22·사진)이 강동윤을 꺾고 우승한 박카스배 천원전이 대표적인 예. 우리 바둑계를 주름잡는 청년고수들 거의 대부분이 천원 우승을 기점으로 ‘출세 길’에 나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벌써 자기 나이와 같은 통산 24회 우승에 빛나는 이세돌의 타이틀 출발점이 2000년 제5기 천원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영훈이 최연소 우승 역대 2위 기록을 곁들이며 타이틀 홀더 명단에 처음 이름을 새겨 넣은 것도 제6기 천원전이었다.

7기 때 우승자 송태곤과 8기 챔프 최철한도 마찬가지. 최철한은 당시 동갑내기 라이벌인 원성진과 피차 첫 타이틀을 걸고 결승을 펼쳐 역전 우승에 성공했고, 이를 신호탄으로 국수와 기성을 연거푸 따내며 전성기를 열었었다. 이 전통은 10기 때의 고근태, 11기 조한승에게도 이어져 예외 없이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특히 조한승은 성인 기전 5회 준우승의 불운에 울다가 난생 처음 밟은 정상이어서 화제가 됐었다.

올해 제12기 천원전을 정복한 원성진도 이런 징크스를 고스란히 계승했다.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도 번번이 정상 일보 앞에서 좌절을 맛본 끝에 정규기전 첫 제패란 오랜 염원을 푼 것. 원성진은 “그동안 첫 우승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컸는데 이제 날아갈 듯 홀가분하다”며 본격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이번 우승으로 九단에도 올랐다. 이쯤 되면 ‘스타 등용문’이란 이름이 더 어울려 보이는 천원전이다. 이 기묘한 릴레이의 다음 바통은 누구에게 넘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