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한국영화, 이러면 안되겠죠?

＃1. 대한민국 표준 관객 A씨: ‘300’ ‘트랜스포머’ ‘베오울프’… 작년 할리우드 영화에 완전 반했어요. 지금까진 비슷한 수준이면 한국 영화에 애정 쏟았는데, 더 이상은 NO! 혹자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 때 ‘외제차 타는 배우들’의 이중성에 빈정 상했다지만, 오해 마세요. 우리는 영화 그 자체로 판단합니다. 2007년 할리우드 영화는 기술적 차원에서 몇 단계 ‘점프’한 것 같아요. 욕해도 할 수 없어요. 영화도 역시 ‘미제’가 최고인 것 같아요.



＃2. 할리우드 직배사 사장 B씨: ‘잃어버린 10년’은 이제 끝났다. 한국영화 호황기였던 지난 10년은 사실 악몽이었다. 미국 박스오피스 1위의 블록버스터라도, 한국에서는 눈치를 살펴야 했으니까. 스타 캐스팅 한국 영화가 개봉하는 주말이면, 아예 그 다음 주로 개봉을 미룬 적도 부지기수다. 이제는 한국 관객도 맹목적인 애국심에 지친 것 같다. ‘황금나침반’ ‘내셔널트레져 2’…. 지난 주말 한국 흥행성적 1~3위는 우리가 독차지했다.



＃3. 충무로 제작사 대표 C씨: 나도 올해는 포기하고 충무로 떠나려 했죠. 그런데 반가운 희소식. 영화 하겠다고 뛰어든 SKT와 KT가 실탄을 ‘쏘고’ 있어요. 예상외로 어슷비슷한 기획영화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입디다. 그럼 그렇지. 원래 충무로에 있던 인력이 그 회사에 가서 ‘브레인’ 역할 하고 있다는데, 뭐 하늘 아래 새로운 기획 있겠어요? 이렇게 총알을 쏴 주시면 올해도 그럭저럭 로맨틱 코미디 몇 편 만들 수 있겠네.

＃4. 연출만 하고픈 영화감독 D씨: 내 소원이 연출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떡해. 쓸만한 시나리오가 없는걸. 감독이 시나리오 쓰느라고 시간 다 빼앗기고 있으니, 이게 무슨 꼴이냐고요. 한국 영화 위기는 단언컨대 서사의 위기예요. 제대로 된 시나리오만 있으면, 금방 극복합니다. 모두가 공감하니, 올해는 좀 좋은 시나리오가 나와주겠죠?



＃5. 전업 고려 중인 시나리오 작가 E씨: 말은 맞죠. 하지만 한국에서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이지 작가가 아니랍니다. 엿가락 늘이듯 제작기간 늘어지면서 스무 번 서른 번 고쳐 쓰는 거야 그렇다 쳐요. 각본 계약과 동시에 모든 판권을 넘겨줘야 하는 게, 우리 시나리오 작가의 현실입니다. 할리우드 작가 파업이 부럽네요. 배우들도 개런티 찾아 드라마로 발길 돌린다는데, 우리도 올해는 전업해야겠어요. 방송 드라마에서는 작가가 왕이라니까.



※ 생각하기 싫은, 가상의 최악 시나리오다. 지난해 개봉한 110여 편의 한국영화 중 본전이라도 건진 영화는 6~7편. 나머지 영화들은 제작비 절반도 못 건졌다. 11월까지의 수익률이 무려 ―62.1%. 정상적인 산업이라면 벌써 붕괴됐어야 마땅할 수치다. 한국 영화의 위기에 대해 수많은 분석이 나왔지만, 한두 가지 대안으로 해결될 것이라 보는 것은 당연히 지나친 낙관.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머리를 숙이고 뼈저린 반성과 창의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등 돌린 관객의 사랑을 다시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008년에는 부디 이 모든 가정이 가정으로만 그칠 수 있기를.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