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미치다

한때 '김정은 표'라는 수식어가 붙은 드라마들이 잇따라 히트를 친 적이 있다. '김정은 표'의 요체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명랑함과 강건함이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영화에서는 큰 재미를 못 봤던 그녀가 이번엔 제대로 업그레이드된 '김정은 표' 캐릭터로 스크린을 노크한다. 김정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실화를 그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ㆍ이하 우생순)에서 노장 선수 '혜경' 역을 맡았다. 혜경은 감독직에서 '잘리고', 선수로 복귀한 후에는 한때 연인이었던 새 감독(엄태웅)으로부터 굴욕을 당하고, 역대 최약체라 평가됐던 팀에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밝은 미소와 굳은 의지를 잃지 않는 인물이다.

늘 밝은 모습의 김정은이지만,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녀의 얼굴은 더욱 더 활기차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이유는 개봉을 기다리는 김정은의 짤막한 소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저 혼자가 아닌 동료 배우 모두의 모습이 눈에 보이더라구요."

말 그대로다. 김정은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본 것이다.

물론 힘들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운동신경은 괜찮은 편이지만 원래 운동을 따로 꾸준히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촬영 석달 전부터 하루 10시간씩 핸드볼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으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죠."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전업 선수도 아닌 배우들이 그럴싸한 그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무한도전'에 가까웠다. 당연히 위기도 있었다. 생각한만큼 '그림'이 나오지 않자 임 감독이 '대역을 쓰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었다. "오히려 그 일이 단결의 원동력이 됐죠. 죽도록 노력한 게 아까워서 더 열심히 하자고 함께 다짐했어요."

결국 'NO 대역, NO CG'라는 애초의 목표대로 핸드볼 신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감독도 여성, 출연배우들도 거의 여성들이다보니 촬영 현장은 여인천하를 방불케 했다. 청일점이었던 엄태웅이 한 이틀 정도 '반짝'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여배우들끼리 하루 종일 뒹굴고 촬영하면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단다. 김정은은 "모니터를 하면서 다른 배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고, 모두가 다 잘 살아난 것 같아 흐뭇하다"고 했다.

아줌마라는 비아냥을 듣고 가정사는 엉망이다. 못 생겼다는 이유로 맞선에서 거절 당하기 일쑤고, 썰렁한 경기장에서나마 우승을 했지만 팀 해체 소식에 고개를 떨궈야만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금메달 이상으로 값진 은메달을 일궈낸다.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고, 영웅 만들기가 아닌 '사람 사는 이야기'가 바로 '우생순'이다. 바로 그 사람 냄새가 배우한테서 물씬 풍긴다. 역시 영화가 잘 나올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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