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실용주의

〈제6보〉(77~89)=일본이 세계 바둑의 성지(聖地)로 통하던 시절에도 일본 내 1인자 자리는 한국 또는 중국 출신 기사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몇 안 되는 순수 혈통(?) 스타인 고노린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간다. 고바야시(小林光一)를 사사한 고노린은 96년 입단, 2005년 천원에 오르면서 정상의 일각으로 자리 잡았다. 신예기전 포함해 총 우승 횟수는 4회.

바둑은 열전보다는 냉전(冷戰)에 가까운 흐름으로 계속 흘러가고 있다. 77 요처(要處). 78의 모자 씌우기도 적진 삭세(削勢)의 급소로 80과 콤비를 이룬다. 81은 중복(重複)의 느낌도 들지만 가장 단단한 수. 요즘 바둑은 체면보다 '실용'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짙다. 시대 조류와 무관치 않은 현상일까.

82는 자체로 급소이며 다음 '가'의 뜀을 보고 있다. 83은 응수 타진. 참고도 백 1이면 중앙 쪽으론 튼튼한 대신 흑 2 치중 때 대책이 없다. 87은 절대. 88도 정수로, 기세랍시고 '나'로 젖혔다간 흑 '다'로 끊겨 중앙이 망가진다. 88의 시점에서 백도 집으로 많이 추격한 모습. 여기까지 침착하게 두어오던 고노린, 갑자기 승부를 서둘기 시작한다. 89가 직공(直攻)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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