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귀환을 촉구합니다!

임순례(48) 감독을 기다리던 관객들에게 2008년은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 같다. 10일 개봉한 그의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7년 만의 충무로 복귀작. 게다가 소수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전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와 달리, 이번엔 처음부터 '대박' 조짐이다. 이번 주말 예매 점유율은 32.51%(영화진흥위원회·10일 오후 6시 현재).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의 잔다르크'라도 선언할 기세다. 도대체 7년 동안 그녀는 어디에 숨어있었던 것일까.

▲잃어버린 감독들을 찾아서

사실 '과작'(寡作)은 임순례로 그치지 않는다. '질투는 나의 힘'(2003)으로 평단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박찬옥 감독은 5년째 차기작 준비 중이고, '집으로'(2002)를 통해 비평과 관객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이정향 감독 역시 6년째 오리무중. 그나마 '지구를 지켜라'(2003) 장준환 감독이 5년 만에 확정 지은 '타짜 2' 연출 소식이 반가울 지경이다. 재능 부족으로 인한 적자생존이라면 할 수 없지만, 비평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감독들의 길고 긴 '잠수'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임순례 감독과 같은 해 데뷔했던 김기덕 감독이 10년 만에 15편의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들의 '저출산'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작가의 완벽주의 또는 혹독한 충무로

한두 가지 이유로 이들의 늦은 귀환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집으로'의 제작자인 황재우 이사는 "시나리오 초고(初稿)가 완고(完稿)가 될 때까지 절대 내놓지 않는" 이정향 감독의 완벽주의 탓을 했고, '질투는 나의 힘'을 제작한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 역시 박찬옥 감독을 "영화 한 편에 목숨 거는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완성도에 대한 집착과 첫 작품 성공에 따른 부담을 논외로 하면, 결국은 갈수록 얼어붙는 시장 환경이 남는다. 한국영화감독 조합(대표 이현승)에 따르면, 지난 1년간(2006년 12월~2007년 11월) 개봉한 한국 영화 110편 중 신인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절반을 넘긴 56편. 그 중에는 빼어난 신예도 일부 있겠지만, 감독의 재능보다는 연출료 등을 고려한 산업적 선택이 대다수다. 경험과 능력 있는 중견 감독들의 영토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학적 야심에 불타는 감독들에게 충무로가 더욱 가혹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동시대 관객과의 호흡을 위하여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임 감독이 준비했던 작품은 자신이 직접 각본을 썼던 '무림 고수'. 하지만 전형적인 상업영화 틀을 갖고 있지 않았던 탓에, 캐스팅도 투자도 쉽지 않았다. 2, 3년간 분투하던 그는 결국 이 프로젝트를 미뤘고, 다른 제작사가 준비해왔던 대중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먼저 찍었다. "세속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물"(MK픽처스 심재명 이사)이라는 게 충무로의 중평이었지만, 임 감독은 "이번에는 대중적으로도 꼭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50억 가량의 엄청난 제작비나 고생한 배우들에게 책임을 진다는 차원뿐만 아니라, 내 작품이 품고 있던 어떤 경직성, 어떤 고통스러움을 스스로도 풀어버리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훨씬 더 유연하고 친절해진 화법으로, '마이너리티'에 대한 감독 특유의 애정을 이야기한다.

장준환 감독도 '작전 변경'을 시도했다. 탁월한 B급 상상력으로 이름났던 장 감독이 원래 준비했던 작품은 '파트맨'. 방귀(fart)가 독해 왕따 취급을 받던 소년이 커서 정의의 사도가 된다는 야심 가득한 SF다. 하지만 투자자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웠고, 결국 700만 관객을 동원했던 흥행 영화 '타짜'의 후속편 연출을 먼저 맡기로 했다. 박찬옥 감독도 지난 가을부터 메이저 제작사인 MK 픽처스와 함께 차기작 '파주'(가제) 작업을 재개했다. 형부를 사랑하는 젊은 여자 이야기다. 그나마 활발하게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들과 달리, 이정향 감독은 아예 두문불출이다. 황재우 이사는 "외부 접촉을 끊고 주로 외국에서 시나리오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 달 전 이메일에서, 이번에는 시나리오가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암시를 강하게 받았다"고 했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재능을 검증 받은 이 감독들이 동시대 관객과 호흡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고 했다.

당신들의 귀환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