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 기자의 시네마 핫!] 해외 언론이 극찬한 '해변의 여인' 맨해튼 강변에서도 뜰까

9일자 뉴욕타임스에 익숙한 얼굴들이 떴다. 한 남자는 착잡한 듯하고, 한 여자는 뭔가 음미하는 표정이다. 또 다른 남자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각각 김승우·고현정·김태우이고,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2006년 개봉) 중 한 장면이다.

'해변의 여인'은 미국 뉴욕의 비영리 시네마테크인 '필름 포럼'에서 지난 9일(현지시각) 개봉했다. 뉴욕타임스는 '비평가의 선택'이란 부제를 달아 이 작품과 홍 감독의 연출을 이렇게 호평했다. "홍상수 감독은 달콤쌉싸름한 감정을 잡아내는 재능이 있다. 유머와 상처, 경솔함과 고통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능력도 갖췄다." '해변의 여인'은 22일까지 상영된다.

유럽에서 이미 인정받은 홍 감독에 대해 미국 영화인들의 이해도가 높은 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극장전'(2005)으로 칸 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받고 유럽의 크고 작은 영화제 상을 거머쥐었던 이력만으로도 유력 해외 언론이 관심을 쏟을 만하다.

몇몇 해외 언론에 소개된 '해변의 여인' 리뷰를 보노라면 찬탄에 가까울 만큼 화려한 수사가 등장한다. 온라인 매거진 '살롱닷컴'은 작년 10월 '해변의 여인'을 거론하며 "홍상수 감독 작품은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에릭 로메르와 이탈리아의 페데리코 펠리니의 교차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썼다. 영화 전문지 '프리미어'는 "홍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매혹적이고 접근성 높은 작품"이라며 "자기 파괴와 집착, 배신, 위선에 대한 지극히 솔직한 해석이 돋보인다"고 칭찬했다. 미국 영화 정보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선 '토마토 지수'(영화 신선도를 매기는 평점으로 100% 만점) 93%라는 높은 점수를 줬다.

'해변의 여인'은 2006년 개봉 당시 고현정이라는 톱스타의 출연으로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러나 주로 그랬던 것처럼, 평단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변의 여인'이 지금 미국과 동시 개봉했으면 어땠을까. 비록 시네마테크 개봉이긴 하지만 해외 언론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면 더욱 주목받지 않았을까. '○○에서 이렇게 평가했대' '○○가 높은 점수를 줬다던데?' 하는 입소문에 뒷심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전도연의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 탄력을 받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