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빛나는 두 조연

목요일(10일) 개봉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ㆍ 이하 우생순)은 단순히 핸드볼 대표팀의 올림픽 은메달 획득기도 아니고 영웅 만들기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영화다. 모두가 챔피언인 이 영화에서 주연들을 더욱 빛나게 했던 두 조역이 있다. 바로 청일점 엄태웅과 개성파 연기자 조은지다. 두 사람이 말하는 '우생순'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은지:코믹 수문장

온몸에 공맞은 멍자국

누가 그녀를 보고 쉽게 잊을 수 있을까. 문제작 '눈물'로 데뷔한 이후 개성있는 외모와 톡톡 튀는 연기를 보여줬던 조은지가 이번엔 감동꾸러미 영화를 들고 나왔다. 물론 전매특허인 코믹 연기도 빼놓지 않았다.

조은지는 '우생순'에서 국가대표 핸드볼 대표팀 골리(축구의 골키퍼에 해당) 수희 역을 맡았다. 수희는 국내의 얕은 선수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가대표를 꿰차고 있는 붙박이.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맞선 자리에서 굴욕을 당하기 일쑤지만, 늘 밝은 모습으로 생활과 현실에 축 처진 대표팀 '언니'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이다. 정란 역의 김지영과 함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웃음을 주는 감초같은 존재다.

비록 골문을 지키는 포지션이긴 하지만 촬영 석달 전부터 다른 동료배우들과 함께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고 또 뛰었다. "애초부터 힘들 거라 생각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정말 죽을 지경이었죠."

조은지는 포지션의 특성상 주로 공을 맞는 연습을 많이 했다. 공통적으로 진행되는 러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이 끝나면 포지션별 맞춤형 교육이 이뤄졌는데, 조은지는 몸으로 공을 막아내는 게 일이었다. 온 몸에는 멍을 달고 살다시피 했다. 그나마 멍든 것 쯤은 나은 편이었다. 남모를 고통이 있었으니 바로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골리는 상하의 모두가 긴 옷을 입어요. 게다가 충격 방지를 위해 기모처리까지 돼 있고, 건장하게 보이려는 욕심에 내복까지 몇 벌을 껴입었으니… 한여름 무더위에 찜통 체육관에서 쓰러질 뻔 했죠."

하지만 다른 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듯 육체적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육체적 한계가 몰려오고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질수록 더욱 애틋한 동료애가 싹텄다. "각자 너무 힘들어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상대방을 위로하며 깔깔 웃어댔어요. 촬영 중에는 본명보다 캐릭터 이름을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했구요."

많은 이들은 조은지의 전작들을 보고 '망가지는' 역할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정작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란 게 어차피 맞춤형 인간이 돼야 하잖아요. 영화를 위해서 각자 할 몫이 있는 것이고, 거기에 맞출 뿐이죠." 빨리 오르기보다는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연기자. 조은지 최고의 순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엄태웅:청일점 감독

"'실미도' 찍는 거 같았어요."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을 영화화한 '우생순'의 엄태웅이 영화를 '실미도'에 비교했다.

출연 배우 대부분이 여자, 감독도 여자인 '우생순'에서 엄태웅은 청일점 남자 감독 안승필 역을 맡았다. 여자들에 둘러쌓여 있던 그가 남자만 등장한 것으로 유명한 영화 '실미도'에 비교하니 재미있다. 실제로 엄태웅은 '실미도'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주변이 온통 여배우들이었지만 여자라는 생각은 전혀 안들었어요. 오히려 여배우들의 기가 더 세서 남자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영화 촬영이 여느 남자배우들과의 작업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남자들의 땀냄새가 진동하는 '실미도'처럼 '우생순' 역시 여자의 향수가 아닌 사람의 땀냄새로 가득찬 영화란 의미다.

엄태웅은 영화에서 자신의 별명인 '엄포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진 않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위압적인 감독이 아니라 커다란 선글라스에 느끼한 분위기, 얄미운 말투로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엄태웅만의 안승필 감독을 만들었다.

"실제 국가대표팀의 임영철 감독님을 여러번 만났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게 어려웠어요. 제 움직임 하나하나가 진짜 감독 같은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그는 스포츠팀의 감독처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핸드볼을 직접 시연하는 여배우들처럼 육체적인 어려움은 없었지만 보여주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표현하는 연기는 지켜보는 감독의 마음과 같았다. "선수들을 빛나게 하는 감독 역할이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는 역을 편한 마음으로 연기할 배우는 별로 없다. 특히 엄태웅처럼 주연과 조연의 사이에 놓여있는 역할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소화했다. 엄태웅이 없었다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결코 빛날 수 없었을 것이다.

< 박종권 기자 scblog.chosun.com/tony5151>



[☞ 웹신문 보러가기] [☞ 스포츠조선 구독]

- Copyrights ⓒ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