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열일곱살에 데뷔해 N세대의 대표 아이콘이었던
김민희도 변했다. 화려한 파티 드레스같던 그녀가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7일 개봉, 감독 권칠인)에서는 단추를 서너개쯤 풀어헤친 셔츠같은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동안
김민희는 '패셔니스타', 혹은 '차갑고 도도함'으로 설명되는 배우였다. 이미지가 그랬다. 그러나 이번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껍질을 깨버렸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20대 중반의 시나리오 작가 아미. 대충 묶은 머리에 헐렁한 옷차림. 선머슴 같은 말투 등이 지금껏 보여졌던 김민희의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극중 아미는 시원시원하다 못해 너무 거침없어 탈일 정도다. 고성방가는 기본. 술 주정에 욕설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제 그녀의 모습은 어떨까.
"아미 캐릭터 때문에 딱히 뭔가를 준비한 건 없어요. 아마 제게도 아미같은 면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요? 다만 시종 하이톤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이나 술 주정 연기는 좀 어려웠어요. 사실 저는 주사가 없거든요. 제법 잘 마시기도 하구요. 어쨌든 워낙 처음 연기해 보는 자유분방한 캐릭터라 뭐라도 하면 그 자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질 거라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미로 살았던 몇 달 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변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사실 아미의 기분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캐릭터죠. 대신 즉흥적이고 막 내지르는 역할이라서 촬영 기간 내내 속은 시원했어요. 심지어 저보고 '남자같다'는 말씀을 하신 분도 계셨으니까요."
최근 공백기가 적잖았다. 연기는 드라마 '굿바이 솔로' 이후 약 2년 만이고, 영화는 '서프라이즈' 이후 무려 5년 만이다. 딱히 의도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찍은 쉼표는 앞만 보며 달리던 그녀가 여유를 가지고, 배우로서 근성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오랜만에 촬영 현장에 나서니 예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걸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어릴 때는 귀여움만 받고 저만 챙겼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을 챙기게 되고 동지애같은 것도 느껴지더라구요."
이제 아미와 함께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 김민희. 여전히 깡말라 보이지만 "쪘다"고 주장하는 나이살만큼이나 속이 꽉 찬 배우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