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1.21 09:06

할리우드에서 재난 영화는 단골 메뉴다.

찬란한 인간의 문명이 파괴당하는 장면은 관객들 눈길을 끌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통해 문명을 승리로 지켜내는 호쾌한 결말은 커다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 '미스트'는 일반 재난 영화와 그 패턴이 다르다.

블록버스터 재난을 강조하는 영화 홍보와는 다르게 외부의 적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에게 집중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앞에서 파리 목숨이 된 인간들이 벌이는 행태는 이성, 종교, 권력 등 현 사회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조롱하는 듯 하다. 이 같은 냉소는 러닝타임 내내 이어진다. 그래서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던 관객들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미스트'에는 색다른 영화적 재미가 있다.

원작자 스티븐 킹의 스토리와 프랭크 다라본트의 연출력이 최적화 된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안개처럼 다음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단순하던 괴물과의 사투가 점점 인간과의 사투로 변해가면서 어느 곳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은 관객의 숨을 막히게 할 정도다.

게다가 다라본트의 특유의 심리 서사 능력은 탁월하다. 너무 빠른 전개로 조금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는 최근 영화들과는 다른 묵직함이 느껴진다.

'미스트'의 백미는 단연 결말. 일부 관객들이 허탈감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감독의 모든 것이 함축돼 있는 장면이다. 원작에서 열려있던 결말을 감독이 과감하게 재해석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것. 흥행 측면에서 감독의 결말이 다소 불리할 수 있지만 영화의 가치를 한단계 올려놓은 장면임엔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미스트'의 제작비는 한국영화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170만달러(약 16억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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