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여제(女帝) 독재 끝나나

루이나이웨이(芮乃偉)의 철옹성이 마침내 무너지는가. 그 동안 여류 바둑계에서 그녀가 누려온 위상은 한마디로 절대적이었다. 국내외 여류타이틀을 거의 독점한 가운데 대(對) 여성기사 역대 통산승률이 물경 83.8%(134승 26패)로 집계되고 있다. 독재(?)의 정도로만 보자면 우칭위안이나 조훈현, 이창호의 전성시절을 뺨칠 정도다.

그 루이가 지난주 제1회 원양배 결승서 박지은(25)에게 무릎을 꿇었다. 단판승부 아닌 번기(番棋) 결승서 루이가 진 것은 2004년 초 여류명인전서 조혜연(23)에게 패한 이후 4년 만이다. 바둑계가 박지은의 이번 승리를 놓고 九단 승단보다 루이의 아성을 깨뜨렸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번 원양배가 루이 九단 본격 쇠퇴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만도 하다. 63년 생이니 올해 45세. 어떤 강자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나이에 왔기 때문이다. 결승 세 판을 지켜본 프로들은 "루이의 바둑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갈팡질팡했다"고 입을 모았다. 2~3년 전부터 이미 특유의 집중력이 실종되기 시작했다고 평하는 기사도 있다.

그러나 루이 성(城)의 완전 함락을 점치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위기가 좀 더 강하다. 무엇보다 국내 3대 여류기전을 루이가 여전히 독점하고 있기 때문. 이번 원양배 결승 이전 그녀는 국내외 여성기사를 상대로 무려 20승 1패를 기록 중이었다. 2006년 1월 이후부터 현재까지 대 여류 기사 총 전적은 40승 6패. 유창혁 九단은 "압도적 실적으로 판도를 바꿔놓기 전엔 아무도 그녀의 '퇴위'를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루이의 생애 통산 26패는 박지은에게 당한 8패(14승), 조혜연에게 기록한 12패(25승)가 거의 전부다. 조혜연은 한때 3회에 걸쳐 여류 정상에 오르며 루이를 넘어서는 듯 했으나 최근 9연패로 다시 몰리고 있다. 반면 3인자 격이었던 박지은은 특히 큰 승부에서 강세를 보이며 2006년 이후 루이를 상대로 4승 3패의 호조다. 현 시점 '루이 왕조'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세력은 세계 2관왕이자 국내 첫 '토종 九단'인 박지은이란 얘기. 단, 그녀는 천적 조혜연(상대전적 4승 11패)의 벽을 넘어야 할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

루이 九단은 귀국 후 "컨디션은 정상이었고 실력에서 밀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후배들이 급성장한 결과이며, 특히 박지은 조혜연에겐 이제 배운다는 자세로 둘 생각"이라고도 했다. 루이 특유의 겸손이지만, 공부량이 많기로 유명한 그녀가 거센 반격에 나서리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문가들의 대체적 결론은 루이 박지은 조혜연의 3각 구도가 당분간 계속되는 가운데 서서히 새 판도가 형성되리란 것으로 모아진다. 정관장배 5연승의 주역 이민진(24), 대리배 준우승자 김혜민(22), 그리고 이다혜(23) 김세실(20) 이하진(20) 이슬아(17) 등 신인 유망주 그룹도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다. 일단 변화의 물꼬는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