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침착함의 승리(勝利)

〈총보〉(1~172)=앞서 84년 열렸던 마지막 한·일 교류전 얘기를 했지만, 요즘 우리 청년기사들의 활약상을 볼 때마다 금석지감이 느껴진다.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온소진이 현역 일본 랭킹 4위의 강자를 완파한 것이다. 온소진 뿐인가, 한국의 젊은 강자들은 국제무대에서 일본기사라면 타이틀 홀더를 만나도 노골적으로 기뻐하는 판이다. 국내 동료들보다 훨씬 쉽다는 것.

장기전 모드로 출발했다가 중반 초입 흑 89의 '도발'로 급류를 탄 끝에 백의 완승으로 끝난 바둑이다. 89로 참고도의 코스로 하변을 공략하면서 은근히 A를 노렸다면 전체적으로 흑이 좀 더 유력한 흐름이었다. 고노린은 정밀함에서 딱 2% 부족을 드러냈고, 그 순간부터 바둑은 급전직하 밀려버렸다.

온소진의 침착함은 매번 경이롭다. 느린 듯한 걸음 속에서 그는 번번이 천리(千里) 앞으로 훌쩍 날아가 있곤 한다. 평소 부단히 단련한 수읽기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유제강(以柔制康)이란 경구는 온소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계속 정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172수 끝 백 불계승, 소비시간 백 2시간 59분, 흑 2시간 5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