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정치블랙코미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코리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혁명이란 무엇인가 혹은 우리는 혁명의 역사를 어떻게 간직하고 기억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스크린 어디에도 혁명의 숭고함을 찾아볼 수 없다. 영화는 오로지 혁명적 순간에 대한 나름의 자기추억만을 간직한 개인들간의 기억만 비출 뿐이다. 포룸보이우 감독은 세상을 바꾼 역사적 실체로서의 거대한 혁명 담론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일 수도 객체일 수도 있는 개인적 시각에서 혁명을 응시한다. 개개인이 사유화환 혁명의 기억, 과연 그 기억은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부끄러운 것일까?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의 그때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민중들의 저항에 초라한 모습으로 하야한 1989년 12월 22일 12시 8분을 말한다. 이 날은 루마니아의 새 날을 연 승리의 순간이자 반드시 기억해야 할 혁명의 시각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TV 생중계를 통해 전세계가 목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문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루마니아 작은 마을에서의 혁명 유무이다. 포룸보이우 감독은 질문한다. 당신은 그때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혁명의 역사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럽지만, 국민 모두가 저항하고 행동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역사의 진실이며 역사의 단면이다. 반드시 누군가는 역사의 편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어느 누군가는 역사의 진보에 무임승차했으리라. 이런 문제 의식으로 지역방송국 사장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비르질은 혁명 16주년을 기념하는 토크쇼를 기획한다.

우여곡절 끝에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에마노일 할아버지와 술주정뱅이 역사 선생 마네스쿠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TV토크쇼에 출현하게 된다. "혁명을 돌아보는 것은 과거가 명확해야 미래가 명확하기 때문"이라며 비르질은 제법 엄숙하게 혁명의 의미를 진단하고자 한다. 하지만 토론은 차마 두 눈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의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종이 비행기를 접고 사회자의 토론 원고를 뺏는 등 엉뚱한 행동만 하는 에마노일, 혁명에 참여했다고 끝까지 우기는 마네스쿠, 자기 본위의 방송이 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트리는 비르질 등 이 세 배우가 TV토론에서 보여주는 연기의 앙상블은 의도된 조악한 화면과 함께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결국 영화 주제이자 영화제목인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은 부쿠레슈티의 12시 8분이라는 추상화되고 관념화된 혁명이 아닌 내 주위의 일상생활에서의 실질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성찰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혁명을 만들어낸다네."등의 에미노일의 영화대사처럼, 지리멸렬한 일상에서의 변화가 수반되는 삶의 방식을 꾀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혁명이 더 이상 진보와 역사를 설명하는 거대담론이 아닌 우리의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로 인식하게 한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 수상작이자 최근 약진하는 루마니아 영화의 힘과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이영규 객원기자 f-preside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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