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전시는 계속된다

황주리(51·사진)의 회고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2월 13일까지 갤러리 현대·02-734-6111) 오프닝이 있던 23일 오후.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작가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어머,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선생님, 너무 멋져요",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전시 오프닝에서 이런 광경은 드물다. 참말로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리는 화가다.

한밤에 그녀에게 불쑥 전화를 하는 팬들도 있단다. "살다 보면 세상이 싫을 때도 있는데, 선생님 그림은 어떻게 늘 행복한가요 하고 묻는데, 글쎄, 참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황주리 그림 속 사람들 모습에는 하나하나 애정과 사랑이 들어 있다. 아기 업은 아주머니, TV 보는 남자, 전화하는 여자, 골프 치는 남자…. 뻔한 일상의 모습이지만 녹록하지 않다. 얼굴엔 표정이 없지만 어둡지 않다.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그녀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젊은 딸에게 "무는 개가 되라"고 이르곤 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틀리면 틀렸다고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들이 너를 돌아본다"고 했다(공저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중에서).

"그러면서도 당신은 평생 무는 개가 되지 못한 채 늙으셨어요. 어머니를 빼닮은 제가 물기는커녕 물리지만 않아도 다행이라는 건 누구보다 당신이 제일 잘 아셨지요. 전 예술의 결론과 결론이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는 "벌써 회고전 할 때가 되었나, 회고전이라는 말은 버릇 없는 것 같은데…"라고 말하지만, 198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시기별 대표작을 모으니 100여 점이다. 전시에 맞춰 에세이집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생각의 나무)까지 냈으니, 그간의 작품세계를 돌아보고 중간 정리를 하는 전시다. 스타일은 변해 왔지만, 그녀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소박한 일상이 조각조각 모여 이룬 '중후함'이다. 삶의 파편을 이어 붙이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 속엔 늘 '격자(格子)'가 있다. 캔버스 위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원고지나 꽃은 격자의 역할을 한다.

미술평론가 윤우학씨는 "황주리는 일상의 현장에서 그 일상을 직조해내는 현실의 직조공"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직조물'은 20여 년 동안 여행을 다니며 모은 그림엽서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다시 그림을 그린 것을 모아 붙인 '여행에 관한 명상' 연작이다. 마오쩌둥, 비무장지대 땅굴, 이집트 사막에 황주리가 생각하는 그 추억, 그 장소의 표정이 들어갔다. 수집광인 그녀는 이전에는 돌에 그림을 그렸고, 안경에도 그림을 그렸다. "지나간 추억과 풍경, 내가 모은 수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즐거워요." 황주리가 주워 담은 과거와 현재의 풍경 하나하나가 조각보처럼 꿰매어져 커다란 세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