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촉촉한 시선] 영화 평론의 죽음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Ebert·65)가 지난 주말 목소리를 잃었다.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기관(氣管)을 절개한 때문이다. 부위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는 몇 번의 암 수술까지 받았다. 수술이 잘 끝났다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이 전설의 영화평론가가 소리를 잃었다는 소식은 극히 상징적이다.

영화 저널리즘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1975)과 평론가 최초의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입성(2005)도 그의 권위를 높였지만 에버트의 명성을 자자하게 만든 것은 역시 TV의 영화 프로그램. 엄지손가락 두 개를 치켜올리며 외치는 'two thumbs up'(최고) 표현 역시 그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화려한 언변으로 영화를 쥐락펴락한 뒤 마치 저승사자처럼 영화를 재단하던 진풍경을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물론 그는 글쟁이다. 그러나 말과 제스처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그의 실성(失聲)을 에버트의 상징적 죽음이라고 표현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마침 몇 달 전 '아메리칸 저널리즘 리뷰'(8/9월호)에 실린 심층 리포트, '미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일자리를 잃고 저널리즘을 떠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는 그래서 더욱 시사적이다.

사실 영화 저널리즘의 위기로 따지면 한국이 더하다. 한달 전 홍릉 영화진흥위원회. 단 한 명을 뽑는 계약직 자리에 수십 명이 몰렸고, 마지막에 3명이 뽑혀 최종 면접을 보러 왔다. 그 자리에서 처음 얼굴을 확인한 이들은 서로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사실은 3명 모두 영화 주간지 A의 선·후배 사이로 시험을 치른다는 사실을 서로 몰랐다는 것. 주간지 A는 최근 경영난을 겪으면서 기자의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가장 많은 정기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는 또 다른 영화 주간지 B도 사정은 딱하다. B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한 영화평론가는 "한마디로 최근의 B는 게토(강제 격리된 소수의 거주지역)"라면서 '디워' 같은 논쟁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일반 대중은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요즘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설 때 "좋았어?"라고 묻는 젊은 관객을 발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대부분이 "재미 있었어?"라고 물을 따름이다. 의미보다는 재미가 우선이고, 교훈 따윈 필요 없다고 외치는 한국의 젊은 관객을 향해 한국의 영화 평론은 '계몽'과 '교양'을 넘어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죽음' '종언(終焉)' 운운하다 보니 소설가 장정일의 말이 떠오른다. 일본계 미국인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기세좋게 선언했던 '역사의 종언'이 결국 현실 세계에서 농담이 되고,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쓴 '근대문학의 종언'이 한국 문단의 비판을 받으면서 더 이상 어떠한 일본제 '종언'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는 우스개 말이다.

영화 평론의 종언(終焉) 역시 수사적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경고인 것. 영화는 태생적으로 저잣거리의 문화이고, 뼛속부터 대중문화일 수밖에 없다.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지지 의무 못지않게 달라지고 있는 대중과 대중영화에 대한 영화 평론의 고민이 절박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