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부자의 여유

〈제7보〉(64~75)=후야오위는 어렸을 때 장난꾸러기였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정서적으로 순화시키려고 피아노 미술 따위를 배우게 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흥미를 보인 분야가 바둑이었고 결국 그 길로 들어서게 됐다." 본인의 회상이다. 이 대목은 어찌 그리 박정상과 닮은꼴일까. 소문난 개구쟁이였던 그 역시 부친에 의해 바둑에 입문, 지금의 차분함을 갖추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64로는 72 정도로 좌상귀에 말뚝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64, 66으로 선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참고 1도가 설명해 준다. 1로 한 번 내려빠진 뒤 3이면 이하 11까지 전체가 패(覇)에 걸리는 것. 참고 2도 2에 막는 것은 17까지 전멸이 기다리고 있다.

선수를 잡은 흑이 67, 69로 압박해 오니 이젠 누가 공격하고 누가 수습하는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71로 보강 겸 삭감을 하며 72를 허용한 것은 배부른 자의 여유이자, 후야오위 특유의 침착함이기도 하다. 73은 "이제 승부는 났소" 하는 태도. 74는 이 쪽을 대충 선수로 지우고 상변으로 가려는 뜻인데 용서 없이 75로 치중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