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인의 사진을 찍는 것은 내게 지독히도 흥분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곤 했고 아직도 그들 중 몇몇을 좋아한다. 그들은 나에게 수치와 경외가 뒤섞인 듯한 감정을 갖게 했다. 그들에게서 나는 전설 속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마치 길을 막고 수수께끼에 답을 요구하는 동화 속의 인물처럼. 세상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기형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상처와 한 몸이다. 그리고 그 시련을 이미 초월하고 있다. 그들은 귀족이다." -디앤 아버스
혹시 오즈(odds, 기묘한 것들)의 마법사(wizard of odds)라 불리던 여성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를 아는가.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추방된 마이너리트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증언했던 20세기 최고 문제 작가였던 디앤 아버스. 그녀의 사진은 언제나 기형자들의 세상이었다. (그것도 낯설지만 미묘한 아름다움을 주는) 정상이 아닌 불구로 태어난 육체적 일탈자들(누군가는 '세상의 저주받은 이들'이라고 불렀던)의 삶을 탐닉하고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굳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전유한다는 것이라고 수잔 손택의 말을 따르지 않더라도.그녀 스스로는 위대하고 슬픈 사진가를 꿈꾸었다. 하지만 평단에서 "퇴폐적 우아함을 지닌 착취적 나르시시스트'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사진계의 이단아 디앤 아버스. 금지된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욕망으로 생을 영위했던 디앤 아버스를 스크린으로 옮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스티븐 쉐인버그 감독의 영화 '퍼'를 통해 우리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구현된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의 기묘한 초상을 만날 수 있다. 니콜 키드만이 디앤 아버스를 연기해 더욱 화제가 된 영화 '퍼'는 실제 디앤 아버스의 사진모델이었던 출신인 패트리샤 보스워스의 전기를 원작으로 삼았다. 하지만 피터 웨터 감독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 대부분의 전기 영화가 그렇듯이, 스티븐 쉐인버그 감독의 영화역시 팩트와 픽션을 더한 팩션의 내러티브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감독은 사실적인 팩트의 구성보다 허구적인 픽션에 더욱 역점을 두고, 디앤 아버스에게 영감을 준 삶의 찰나를 선보인다.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디앤이 어떤 계기로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사진가로 변화하게 되는 지, 그 새로운 삶의 '결정적 순간'을 기묘한 판타지로 스크린에 옮긴다. 그 기묘한 판타지는 바로 영화 제목인 퍼(FUR)의 이중적인 의미로 표현된다. 겉으로 보이는 한 꺼풀(fur)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계에 몸을 던진 한 사진작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흥분과 설렘 그리고 두려움, 혼란과 결단 같은 감정을 온통 머리카락, 털 등의 또다른 모피(fur)의 이미지로 스크린을 수놓는 것. 그 현란하고 강렬한 퍼의 이미지는 상영 내내 우리를 세뇌시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환영을 보는 것만 같다.
영화는 두 딸의 엄마이자 사진사인 남편의 어시스턴트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디앤에게 어느 날, 선천성 다모증 때문에 기이한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라이오넬이 위층으로 이사오면서 시작된다. 라이오넬의 모습이 궁금했던 디앤은 이웃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이유로 라이오넬의 집에 방문하게 되고, 결국 디앤과 라이오넬은 사랑에 빠지며,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디앤 아버스의 사적이고 은밀한 내면의 변화를 추적하는 영화 '퍼'는 무엇보다 '세크리터리'에서 보여준 셰인버그 감독 특유의 기묘한 것에 대한 감각을 보여준다. 인생의 새로운 봄날을 열게 한 그 짜릿하고 아름다운 찰라의 역사가 다름아닌 비정상적 기형의 세계라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그 의미는 사뭇 교훈적이다. 카메라 프레임 바깥에 있는 현실은 잘려 나가듯이, 내가 가진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탈을 시도하는 그 순간 우리는 또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낯선 기묘함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디앤 아버스의 사진처럼, 스티븐 쉐인버그 감독의 영화 '퍼'도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영화이다. 또한 영화 '퍼'는 두 주연 배우인 니콜 키드만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섬세한 내면 연기 대결도 볼만 한 작품이다.
< 이영규 객원기자
f-preside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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