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종교도… 바코드로 읽어낸 세상

뉴욕 맨해튼 첼시에 있는 비영리 전시공간 '화이트 박스'(White Box)에 들어서는 순간, '안과 밖, 그 경계의 밸류'(value)라는 네온으로 만들어진 바코드 작품이 관객을 반긴다. 갤러리의 긴 통로를 지나다 보면 왼쪽으로는 바코드가 찍힌 전 세계 국기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몸을 조금 돌리는 순간 바코드로 구성된 방석 위로 설치작가 전수천이 그대로 본 뜬 국립중앙박물관의 미륵보살반가상이 한 점 놓여있다. 이 모든 오브제로 다가가기 위해서 관객은 계단을 내려가 바코드 선 위를 직접 걸어 다녀야 한다.

설치작가 전수천의 장소특정형(site-specific) 작품의 전시장 풍경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쓰이는 평범한 필수품에서 시작해, 정신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책, 나아가서는 국기라는 기호를 통해서 드러나는 국가의 파워, 혹은 정치나 종교의 가치를 바코드를 이용해 보여준다.

'반가상'에 앉는 순간 일상적 코드인 '바코드'는 일종의 도전을 맞게 된다. 한 손을 턱에 괴고 사색에 잠긴 조각은 국보라는 불교 조각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우리와 똑같은 눈높이의 오브제로 놓여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를 보면서 바코드로 읽어 내릴 수 없는 그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를 함께 놓고 보게 된다. 작가를 통해 바코드의 가치 또한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선과 공간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전수천은 장소 특정형 작품들을 통해 갤러리 공간 자체를 바코드화한다. 바코드를 이용하는 그의 작업은 수년간 드로잉과 전통적인 미술 언어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