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에 데뷔했으니,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수많은 배우가 태어나고 사라져가는 사이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화요일(5일) 개봉된 '마지막 선물'로 설 극장가 인기몰이에 나선 신현준. 20년 내공이 절로 느껴진다. 애끓는 부정을 절절하게 풀어낸 그를 놓고 객석에선 울음바다가 터진다. 각종 포털의 관객 평점도 높다. '세상이 버린 무기수가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이야기가 제대로 통한 듯,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신현준이 달라졌다
소위 기자시사회의 '기본 포즈'란 의자 뒤로 젖히고 두 다리 적당히 꼬는 자세. 그런데 '마지막 선물'을 보다 보면 절로 무장 해제가 된다. 눈물이 와락 터진다. 첫 장면부터 '어라'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극 중 배역은 친구 딸인 세희에게 간 이식을 하고자 휴가를 얻은 무기수 태주. 교도소를 나서는 순간 보여주는 야비한 웃음이 압권이다. 세희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됐을 때는 한가지 표정에 수십색의 감정을 담았다. '가문의 위기' '가문의 부활' 등의 코믹 이미지는 떠올리기도 어렵다.
"최근 코미디를 연달아 했더니, '마지막 선물'에서 제 모습을 보고 모두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하하. "
'마지막 선물'은 그의 고집으로 따낸 배역이다. 시나리오를 본 순간 확 끌린 신현준은 자기 팔뚝에 사인펜으로 배역 이름을 써놓았다. 친구이기도 한 김영준 감독을 만날 때마다 팔뚝을 보여주면서 "대한민국에서 나 보다 태주 역할을 잘 소화해낼 사람은 없다"며 설득했다.
'맨발의 기봉이'때도 모두 말렸다. 제작 초기 엎어질 위기에까지 처한 이 영화를 그가 살려냈다. 이처럼 따뜻한 영화는 반드시 세상의 빛을 봐야 한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한번 필(feel) 받으면 앞 뒤 안보고 달리는 것이다.
▶신현준은 한결같다
주인공 캐릭터에 신현준의 컬러를 녹였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태주는 절름발이고, 웃음 한번 안 짓는다. 이를 부드럽게 바꿨다. 전반부 허를 찌르는 애드리브로 관객 웃음을 유도한 것은 그의 제안이다.
결과는 대박. 기존 이미지와 새 인물간 쿠션 역할을 해주는 장치들로 인해 관객들은 거부감 없이 태주란 인물에 빠져들어 간다.
영화 '비천무'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김영준 감독과는 이번에도 환상 호흡을 자랑했다.
"김 감독이 상당히 오픈 마인드에요. 배우의 제안에 항상 귀 기울이죠."
극 중반 병원 에스컬레이터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신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이 같은 적극적인 태도는 '마지막 선물'때만의 일이 아니다. 이게 바로 신현준이 일하는 스타일이다.
몇년 전 청룡영화상 시상식 때 에피소드 하나. 당시 신현준의 시상식 파트너가 갑자기 불참을 선언했다. 그것도 행사 하루 전에. 이때 목에 깁스를 한 대부분의 배우들은 뒤로 살짝 몸을 빼게 마련이다. 신현준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파트너를 적극 설득했고, 덕분에 시상식은 '무사히' 끝났다.
이처럼 매사 최선을 다하는 신현준은 항상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엄청난 팀워크를 이끌어낸다. 그래서 그와 한번 작업을 해본 사람들은 바로 팬이 된다. 이것이 20년 가까이 신현준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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