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명국과 졸국

〈총보〉(1~135)=135 이후 백이 헤어날 길은 없다. 참고도는 예상되는 변화 가운데 하나.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명국(名局)과 졸국(拙局) 또한 돌 하나 차이로 갈린다. 초반 38이란 기발한 강수엔 박정상의 평소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준비했던 대로 두었으면 천하의 명국이 됐을 텐데, 40에 의해 생애 최악의 한 판으로 급전직하 했다.

어느 젊은 기사는 "아마도 순간적으로 딴 수가 보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경우 행로를 틀면서 엉뚱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얘기다. 평소 침착한 박정상도 이 바둑에서 어지간히 긴장했던 모양이다. 그 단 한 수의 실착이 놓여진 이후엔 흑이 특별히 잘 둔 곳이 없음에도 백에게 전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후야오위의 꾸준함은 높이 살 만하다. 지난 해 준우승에 그친 아쉬움을 말끔히 털고 다시 4강을 밟고 올라섰다. 항상 우승권을 조준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지만 한 번의 우승도 못 거둔 것은 그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이미 세계정복 경험이 있는 박정상이 위안을 삼을 만한 대목이다. (78…22, 83…47, 118 124…54, 121 127…85, 135수 끝 흑 불계승, 소비시간 백 2시간 51분, 흑 2시간 2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