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혼신 연기, 정말 뜨겁다

칭찬 일색으로 물든 '추격자'(14일 개봉)에 대한 평단의 평가에는 어쩌면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에 대한 심정적 응원'이 일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지닌 몇 가지 흠결에 대한 평가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는 듯한 혐의가 들기 때문이다. 사실 피해 여성에 대한 이 영화의 잔혹한 묘사는 상당수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고, 또 범죄를 방치하는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까지 고발하겠다는 감독의 욕심 역시 아직은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한두 가지 이유로 이 박력 있는 스릴러가 거둔 성취를 평가절하한다면 공정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연쇄살인마를 쫓는 출장 안마소 사장의 숨가쁜 하룻밤을 그린 이 영화는, 무엇보다 장르 영화로서 재미있다. 추격 장면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 장면에서조차 긴장감을 잃지 않는 신예 나홍진의 연출은 관객들의 심장 박동을 가파르게 높이고, 추격자 김윤석과 추격당하는 자 하정우의 연기는 캐릭터에 녹아 들어간 배우를 만나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장르영화를 완벽하게 장악한 감독과 배우를 만나는 기쁨. '금주의 선택'으로 '추격자'를 선택한 이유다.

놀랍게도 이 스릴러는 극 초반에 범인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게다가 연쇄살인의 이유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관객과의 머리싸움이라는 스릴러의 전통적 공식을 제쳐두고, 단지 쫓고 쫓기는 추격의 긴박감만으로 정면 승부하는 것이다. 여기에 실시간 스릴의 쾌감을 극대화한 미국 드라마 '24'처럼, 황혼에서 새벽까지 겨우 하룻밤의 시간을 선택한 '추격자'의 전략도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흥건하게 만든다. 비록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진범 여부보다 영장을 위한 증거확보에 골몰하다 결국 우왕좌왕 자충수를 두고 마는 무능한 공권력에 대한 야유도 꽤 시사적이다.

하지만 역시 '추격자' 매력의 으뜸은 배우에게서 비롯된다. 자신이 얼마나 뜨거운 배우인지를 온몸으로 입증하는 김윤석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압도적이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쓰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인간 말종 사내는 밤새 서울의 달동네와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면서 놀라운 에너지와 설득력을 스크린 밖으로 뿜어낸다. 또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자신도 이해 못할 살인을 반복하는 연쇄살인마 역의 하정우의 연기 역시 순도 높은 파괴력을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장편 데뷔한 나홍진 감독은 10분짜리 단편 영화 '완벽한 도미요리'로 이미 일찌감치 주목 받았던 신예. 2008년 벽두, 충무로는 또 한 명의 패기 있는 재능을 얻었다.



줄거리 

감기로 끙끙 앓는 미진(서영희)마저도 가차없이 일터로 내보내는 출장 안마소 사장 준호(김윤석). 그러잖아도 업소 여자들이 하나 둘 사라져서 울화가 치미는데, 미진마저 연락이 끊긴다. 전직 경찰이었던 이 악덕 포주가 뒤늦게 발견한 공통점은 '4885'. 없어진 그 여자들을 찾았던 '손님'의 휴대전화번호 뒷자리다. 미진이 행방불명된 동네에서 우연히 영민(하정우)과 마주친 준호는 이 사내가 범인임을 직감하고 격투 끝에 붙잡아 경찰에 넘긴다. 하지만 증거를 찾지 못한 경찰은 영민을 구속하는데 실패하고, 준호는 다시 사적(私的) 추격에 나선다.



별점

제대로 내리치고 뜻대로 휘몰아 간다. ★★★★  황희연·영화 칼럼니스트 

범인을 찾는 스릴러가 아니라 범인을 둘러싼 모든 것을 추격하는 흥미진진함이 빛나는 영화. ★★★★ 이상용·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