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10대 이야기 평단에 전례없던 호응

완벽한 '줄타기'다. '10대 소녀 임신'이라는 소재를, 경박하지도 무겁지도 않게 그린 영화 '주노'(21일 개봉)는 뜻하지 않은 임신, 불임가정, 입양 등 사회 저변의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무척 밝고 경쾌하다. '칙릿(chick lit·20~30대 도시여성 취향 문학)'을 읽는 듯한 빠른 호흡의 대사와, 사람들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전개가 장점이다.

"10대가 아이를 키우는 건 아이에게 유해하다"는 간호사 말에 "흥청망청하며 아이에 무관심한 성인들이 더 위험하다"며 씩씩대는 미혼모의 엄마, "임신했어요"라는 딸의 고백에 화를 내기는커녕 "그 (남자)친구가 그럴 능력이 있었더냐?"라며 재치있게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아버지 등 주변인물들까지 나름의 철학을 들려준다.

제작비로 24억원쯤 쓴 독립영화지만 평단과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지금까지 약 13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현재 아카데미 작품·감독·각본·여우주연상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있다.

스트리퍼 출신인 작가 디아블로 코디의 톡톡 튀는 각본과 2005년 '흡연, 감사합니다'로 장편 데뷔해 미국 독립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오른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다. 그래도 최고를 뽑는다면 주노역을 맡은 엘렌 페이지(21). 빈정대는 말투에 하드코어 록음악과 피가 흥건한 슬래셔 영화에 푹 빠진 전형적인 10대를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다소 얼뜨게 보이는 블리커(마이클 세라)와의 단 한번 관계에 덜컥 임신해버린 주노는 중절 수술을 포기하고 입양을 선택한다. 부유한 불임 부부 바네사(제니퍼 가너)와 마크(제이슨 베이트먼)에게 아이를 주기로 약속했지만, 완벽하게 보였던 그 부부 사이에도 심각한 균열이 있다는 걸 알고 주노는 가족애와 사랑에 대해 고민한다.

'주노'라는 제목과 '10대 임신'이라는 소재 때문에 한국영화 '제니, 주노'의 리메이크 아니냐는 의문이 개봉 전 미국 등지에 일면서 디아블로 코디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장문의 반박문을 써올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물론 개봉 이후엔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