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죽음의 계곡

〈제9보〉(122~135)=혼자 초읽기에 몰린 후야오위가 악전고투하고 있다. 희한한 것은 일본어 초읽기라는 점. 대회 장소가 일본이고 그곳 기사들을 기용한 탓인데, 그렇더라도 한·중 대결에 일본어 초읽기는 무언가 어색했다. 차라리 국제 공용(共用)어로 통하는 영어는 어땠을까. 하지만 동양문화의 정수(精髓)라는 바둑세계에서 영어권은 사실 변방에 불과하다. 앞으로 폭넓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궁지에 몰린 백의 필사적 몸부림이 시작된다. 124는 옥쇄작전. 이 수로 참고 1도면 일단 탈출은 가능했다. 다소 복잡하긴 해도 23까지 머리를 내밀 수는 있는 것. 그러나 26 한 방을 맞으면 살더라도 우중앙 일대가 시커매져 역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132로 '가'에 두어 좌변 흑을 위협하는 것은 참고 2도처럼 잘 안 된다.

135가 좋은 수로 좌변 흑은 잡힐 말이 아니다. 하지만 백이 '나'를 선수로 둘 수만 있다면 상변에서 또 한 집이 가능할 것도 같다. "마지막 1분입니다." 일본어를 구사하는 저승사자의 일갈에 쫓겨 후야오위가 떨리는 손으로 돌 하나를 집어 든다. 이홍렬 전문기자 hr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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