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쎈돌' 눌렀다

'괴물 기사'의 파격 행마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초단의 몸으로 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조선일보 주최) 결승에 올라 돌풍을 몰고 왔던 한상훈 二단(중도에 승단)이 거함 이세돌마저 침몰시키고 우승까지 단 1승을 남기게 됐다. 25일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에서 시작된 결승 3번기 제1국서 약관 20세의 한상훈은 세계 톱스타로 각광받고 있는 '쎈돌'이세돌(25) 九단에게 260수 만에 백 불계로 승리했다. 이번 LG배서만 통합 예선 이후 파죽의 9연승 행진이다.

바둑은 중반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접전이었다. 인터넷 베팅에서 네티즌들은 초반 50수까지 한상훈의 31대 69의 절대 열세로 점쳤으나 바둑은 뜻밖의 팽팽한 균형이 유지돼 갔다. 이세돌 특유의 도발을 절묘하게 따돌리면서 분위기가 일변하더니 오후 대국부터는 한상훈 우세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흑의 중앙 백 대마 추궁에 백이 오히려 역습을 통해 수습하면서 백승이 결정돼 버렸다.

프로기사들은 한상훈의 완승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중앙을 162수까지 정리하자 이성재 八단은 "놀라운 수읽기"라며 감탄했고, 강동윤 七단은 "초반 우변 타개로 백이 일찌감치 편한 바둑을 짰다"고 말했다. 김인 九단, 차민수 四단은 "입단 만 1년의 신인이라곤 믿기지 않는 침착함"이라고 칭찬했다. 한상훈은 대국 후 "바둑이 초반부터 내 취향대로 풀려 편하게 짜나갔다"며 "오늘 이겼으니 모레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당찬 자신감을 보였다.

한상훈의 승리 뒤엔 가족들의 '총력전'도 한 몫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택(용인)이 워낙 먼데다 대통령 취임식까지 겹치자 국회의사당 앞의 호텔 방 하나를 잡아 부모님 포함 세 식구가 함께 투숙한 것. 아들을 대국장까지 데려다 주고 출근했다가 오후 4시쯤 다시 달려온 아버지 한열홍(51)씨는 승리가 확정됐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2006년 말 입단, 지난해 3월부터 공식 대국에 출전한 한 二단은 눈부신 활약 속에 벌써 200명이 넘는 국내 프로기사들 중 9위에 올라있다. 이번 대회서 우승할 경우 세계대회 사상 최저단 우승, 최단 코스 우승과 함께 규정에 따라 五단으로 '벼락 승단' 하게 된다. 우승 상금 2억5000만원이 걸린 결승 2국은 27일 같은 장소에서 속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