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화보다 더 생화처럼 식물을 조각하는 남자

서울 화동 PKM 갤러리는 텅 비어 있다. 20평짜리 1층 전시장 북쪽 벽에 싱싱한 붉은 장미 한 송이 홀로 붙어있다. 지하 전시장도 휑하다. 17평 공간에 하얀 진달래, 분홍 진달래를 한 송이씩 벽에 붙이고 튤립 한 줄기를 바닥에 던져놓았을 뿐이다. 콘크리트 바닥의 갈라진 틈새에 풀 한 포기가 뾰족하게 돋았다.

무심코 꺾거나 밟으면 큰일 난다. 이곳에 걸린 꽃 네 송이와 풀 한 포기는 모두 일본 조각가 스다 요시히로(須田悅弘·39)의 '작품'이다. 스다는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런던, 뉴욕, 비엔나, 도쿄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다.

미술 평론가 임근준(37)씨는 "역주행의 미학으로 세계 미술계에 충격과 자극을 준 작가"라고 말했다. 현대미술 설치작품은 크고, 어렵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많다. 작가가 직접 만드는 대신 "이러저러하게 해달라"고 공장에 주문만 하기도 한다.

스다는 반대다. 작고 쉽고 예쁜 조각을 전통적인 기법으로 직접 깎는다. 기예를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섬세한 풀을 전시장 창틀이나 바닥에 세워놓고 "대체 작품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두리번거리는 관객에게 "자연과 예술, 실재와 가상은 어떻게 다른가?" 살며시 묻는 식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스다는 "작품 하나 완성하는 데 하루 12~15시간씩 쉬지 않고 깎아서 3주일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칼을 간다. 목련나무를 토막내서 얇은 꽃잎과 잎사귀를 깎는다. 꽃잎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말려 올라간 것은 물론 잎사귀에 벌레 먹은 구멍이 송송 뚫린 것까지 정교하게 조각한다. 석채(石彩·색소가 든 돌을 곱게 갈아서 아교에 갠 물감)를 칠한 뒤, 다 마르면 꽃잎을 한 장씩 풀로 붙인다.

"왜 하필 식물을 조각하느냐고요? 금방 시들어서 사라지는 일회적인 식물을 나무로 깎아서 '영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게 재미있어요." 스다는 "목련나무를 깎아서 나팔꽃을 만들다가 문득 '이것은 목련인가, 나팔꽃인가?' 갸웃거리곤 한다"고 말했다. 선시(禪詩) 같은 얘기다. 꽃으로 유명해졌지만 그가 맨 처음 깎은 것은 말린 오징어였다. "대학 4학년 때 지도 교수가 '말린 물고기를 깎아오라'고 했어요. 목조각 기술 훈련 차원에서 내준 과제라지만, '이런 황당한 일을 시키다니' 하고 열이 났어요." 스다는 꼬박 한 달간 말린 오징어를 깎았다. "깎다 보니 묘하게도 슬슬 흥과 재미와 오기가 났다"고 했다. 마지막엔 오징어 가루를 뿌려서 냄새까지 나게 했다. 이후 식물로 소재를 바꿨다. 그는 둥근 얼굴로 싱긋 웃으며 "저도 사람인지라 꽃잎을 깎다 실수로 뚝 부러뜨릴 때가 있다"고 했다. "젊어선 그럴 때 앞이 캄캄했지요. 초강력 풀을 찾고 나니 마음의 평화가 오더군요." 16일까지. (02)734 9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