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낮' 황수정 "목소리 연기 힘들어...실패 두렵지 않다"

드라마 '허준' 이후 뭇 남성들에게 머슴살이의 욕구를 불러 일으켰던 황수정. 우여곡절을 딛고 지난해 초 드라마 '소금인형'으로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리고 어느새 1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황수정은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로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영화 '밤과 낮'(감독 홍상수)에서 조용한 변신을 선보였다. 그녀의 단아한 얼굴은 영화 후반부에 잠깐 나올 뿐이다. 하지만 주인공 성남(김영호)의 아내로 나온 그녀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직감?

딱히 특별한 인연도 없었던 홍상수 감독은 그녀에게 느닷없이 캐스팅 제의를 했다. 이유를 묻자 '직감'이라는 단어 하나가 답변으로 돌아왔다. "어떤 배역이냐"는 질문에는 오직 "중요한 역할"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았지만, 그녀는 믿음 하나로 출연을 결심했다.

★그녀 목소리

그러나 '중요한 역할'이라던 그녀에게 주어진 몫은 목소리 연기가 거의 전부였다. "처음엔 황당했죠. 차라리 성우를 쓰시라고도 했죠.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더라구요." 처음 해보는 본격 목소리 연기는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예전에 드라마 '엄마야 누나야'에서 수화로 연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말 대신 표정이나 수화로 감정을 전달하는 게 어려웠는데, 얼굴이 보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목소리로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이번에는 어려움이 더했죠."

★국제전화

아마도 황수정은 실시간 국제 전화로 연기한 대한민국 최초의 연기자로 기록될 듯 하다. "촬영 전날 팩스로 시나리오를 받은 후 매일 새벽 프랑스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어요. 그리곤 연기를 하는 것이죠. 리허설이라고 해 봐야 인터넷 화상 채팅으로 가끔씩 하는 정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얼굴을 못 보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요."

　★여유

"제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몇 년간보다 최근 한 인터뷰가 훨씬 많을 거예요. 그때는 너무 바빠서 인터뷰를 할 시간 자체가 없었거든요. 제가 언론을 기피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죠."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지만, 그만큼 여유가 많아졌다는 말. 갑작스런 여유는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킬 법도 하다. 하지만 황수정은 그저 물 흐르듯 지금의 여유를 즐겼다. "이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도 없고, 그저 좋은 작품하면서 건강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이게 다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요 하하."

태풍이 휩쓸고 간 하늘은 하염없이 맑고 푸르다. 황수정의 얼굴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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