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절이 있었을땐 어땠을까?

허허벌판에 석등(石燈)만이 외롭게 서 있는 경남 합천의 대동사(大同寺)터, 소복하게 쌓인 눈이 주춧돌을 하얗게 덮었고 석탑만 소담스럽게 서 있는 설악산 한계사(寒溪寺)터…. 한때는 스님과 신자들의 독경 소리 가득한 신행(信行)공간이었을 터이지만 지금은 주춧돌 몇 개, 석탑, 석등 같은 흔적만 남아있는 폐사지(廢寺址)들이다.

사진가 이해선씨가 16년간 전국의 폐사지를 답사해 촬영한 흑백작품을 선보이는 '비움 그 숭고의 미학'전을 4일까지 서울 종로구 화동 갤러리스페이스아침(02-723-1002)에서 열고 있다.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 전시에 이씨는 18점의 대작을 내놓았다.

이씨는 태평양의 이스터섬, 러시아의 캄차카반도, 인도, 티베트 등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며 사진과 에세이를 선보여온 작가. 그 동안 '내 마음 속의 샹그리라'(대교 베텔스만) '모아이 블루'(그림같은세상) 등의 책도 선보였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던 그가 국내 폐사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1992년부터였다. 이씨는 "우리의 폐사지에서도 그리스나 잉카, 마야 유적지처럼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각 지역 문화원의 소개를 받기도 하면서 어렵게 찾아간 폐사지들이었지만, 모두 글에 담지는 못했다. 헛걸음을 수없이 하면서 여러 차례 찾아가 분위기를 충분히 익힌 후에야 셔터를 눌렀다. 이씨는 "촬영을 해놓고 보면 지난 16년 사이에도 폐사지의 풍경이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며 "그 옛날 절이 있었을 때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런 현장감을 전하기 위해 대부분 작품을 크게 인화했다고 이씨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