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 기자의 시네마 핫!] 파리는 제2의 '누벨 바그' 꿈꾼다

파리의 에펠탑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 배낭여행을 온 젊은이도, 신혼 여행을 온 부부도, 전 세계 누구든 파리의 낭만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한번쯤은 들러보는 '관광 1번지'다. 이 지역엔 박람회장 전용으로 세워진 샤이오 궁(Palais de Chaillot)이 있다. '궁(宮)'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프랑스의 자존심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지난 1963년부터 들어서 그 위용을 자랑해 왔다. 일종의 영화 박물관 겸 상영관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알랭 레네 등을 주축으로 1960년대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를 꽃피우게 한 성지(聖地)이자, 그들의 놀이터였다.

하지만 그 무엇도 시대의 흐름과 유행 앞에선 꺾일 수밖에 없는 법. 지난 2005년 샤이오 궁에 위치했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바로 그 자리에 '건축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것. 21세기 미래 지향적인 소프트웨어로 디자인과 건축을 앞장세운 정부 정책에 영화는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었다.

파리 시민들의 엄청난 반대와 청원이 계속됐지만, 내부 새 단장을 거쳐 샤이오 궁은 지난해 건축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축사를 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를 거쳤다. 파리에서 만난 프랑시스 랑베르(Rambert) 프랑스 건축학회장 겸 건축박물관장은 "개관한 지 반년도 안됐는데 평일엔 3000여 명이, 주말엔 최대 5000명까지 드나드는 등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영화의 시대는 끝이 난 걸까. 답은 아니었다. 그들은 또 다른 '부흥'을 창조해 내고 있었다. 최고의 명당자리를 내 주었지만,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또 다른 명당자리를 조성한 것이다. 스페인 빌바오 미술관으로 유명해진 미국 출신 천재 건축가 프랑크 게리(Gehry)가 만든 '아메리칸 센터(미국 문화원·1994)'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전격적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프랑크 게리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건물임에도 미국 정부의 지원 부족 등으로 1년 반 만에 문을 닫은 '비운의 장소'였던 그곳이 프랑스 사기업(私企業) 자금과 프랑스 정부 지원금으로 다시 그 면모를 뽐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파리 시(市)가 바로 옆 베르시 빌라주를 관광지와 쇼핑 명소로 재개발하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면서 시너지 효과는 더 컸다. 결국 그들은 '건축박물관'과 '영화박물관(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두 토끼를 잡은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한참 지난 뒤였는데도 여우주연상인 마리옹 코티야르의 사진은 거리 상점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시원한 웃음이 지나는 이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는다. '문화 각인'의 힘을, 그들은 이미 충분히 이용하고 있었다. 영화 마니아들의 '놀이터'도 바뀌었으니 몇 년 뒤 제2의 '누벨바그'가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