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회 LG배 세계기왕전] 백합과 나팔꽃

〈제3보〉(43~58)=덤(6집 반) 크기에 대한 느낌은 기사들마다 다르다. 한상훈만큼 백을 좋아하는 프로도 흔치 않다. 입단 이후 그의 흑번 승률은 38.5%(5승 8패), 백으로는 78.9%(15승 4패)를 기록 중이었다(기록이 남지 않는 예선대국 제외). 이 판은 한상훈이 흑백을 못 맞힘으로써 이세돌이 흑을 선택했다. 서로 원하는 돌 색깔로 결승을 시작한 셈.

43은 전국을 조망하는 급소로, 이 점을 차지해선 흑의 선착 효과가 유지되고 있다. 49까지의 진행은 흑은 봄날 한 송이 백합처럼 활짝 피어나고, 백은 해질녘 나팔꽃 마냥 움츠러든 모습이다. 51은 어땠을까. 입회를 맡은 김인 九단은 "처음 보는 수"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의 단점이 계속 찜찜하다는 뜻.

그래서 51로는 참고도 1이 법수(法手)로 돼 있다. 이세돌은 8까지의 진행이 성에 안 찼던 모양이다. 52로 어깨짚은 뒤 56, 58로 마음 놓고 활개(?)를 친 것도 '가' 근처 흑의 약점을 담보로 잡고 있기 때문. 아무튼 '천하의 싸움꾼' 이세돌과 맞선 20세 청년의 기백이 범상치 않다. 흑도 이젠 칼을 뽑아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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