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부산영화제 관객만족도 최하위

국제영화제 무엇이 문제인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한 지 올해로 13년째. 정부가 국고를 지원하는 영화제만 7개에 이르고 2007년 한 해에만 41억 예산의 충무로 국제영화제와 10억 규모의 국제가족 영상축제가 새로 출범했을 만큼 대한민국은 세계에 유례 없는 '영화제 강국'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제가 관객을 위한 '축제'라는 기본을 잊고 단순히 하나의 '제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부산·전주: 관객수는 1등, 관객 만족도는 꼴찌

부산영화제는 한국 최고를 넘어 아시아 최대규모의 영화제. 지난해 유료 관객수만 무려 15만1526명이다. 2위는 전주영화제의 6만1500명. 하지만 정부 평가결과 관객만족도는 전주가 최하위, 부산이 끝에서 두 번째였다. 관객만족도는 '상영 스케줄이 잘 짜여졌다' '진행이 매끄럽다' '주변에 권하고 싶다' 등 20개 항목의 평균값. 문화관광부가 영화제마다 150~20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현장평가 결과다. 물론 각 개별 영화제는 서로의 정체성이 있고, 관객만족도 역시 전체 평가 지표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은 영화제 운영진이 아니라 일반 관객이라는 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들의 반성과 고민이 시급한 시점이다.

◆양적 규모보다는 내실에 집중해야

내달 5일부터 신촌에서 열리는 제9회 여성영화제는 "여성들의 문화공간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변별력 있는 영화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외형과 규모에 매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이 영화제가 임의로 취재를 요청한 기자의 숫자는 235명. 전년의 두 배 규모다. 하지만 영화제 기간 중 실제 ID카드를 수령한 기자 숫자는 15%에 불과한 36명이었다. 정부 지원 영화제 중 수령률 최하위다. 전년보다 취재기자 숫자가 늘어날 경우 비율에 따라 가산점을 받지, 수령률이 낮으면 감점이다. 스스로의 적정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덩치를 키우려다가 외면 받은 사례다.

지난해 출범한 국제가족 영상축제는 관객들의 외면으로 고민에 빠진 경우다. 원래는 국제영화제로 인가를 신청했지만 세계 최초 상영작 편수 등 국제영화제 충족 기준을 맞추지 못해 '영상 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유료 관객 비율은 10. 3%. 사무국 측은 사회복지시설이나 한부모 가족 등을 위한 무료 초대가 많았다고 해명했지만, 그게 주목적이라면 굳이 또 하나의 영화제일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청소년영화제와 여성영화제도 큰 의미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 축제에는 국고 5억, 서울시 2억의 예산이 지원됐다. 이 행사의 홍보비 지출액은 올해 10회째인 전주국제영화제의 2억3205만원에 육박하는 1억9978만원이었다.

◆'제도'에서 다시 '축제'로

이들 영화제에 대한 개선과 요구사항은 "초심으로 돌아갈 것" "양적 팽창보다는 관객 만족도 향상에 힘쓸 것" "다른 영화제와의 변별력을 갖출 것"으로 압축된다. 지난해에는 특히 부산영화제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이번 정부 평가에 참여한 평가위원들은 "2007년 부산영화제에 대한 비판은 돌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누적된 채 잠복해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노출된 것"이라면서 "지금까지는 부산영화제가 가지는 대표성, 희소성 등으로 인해 관객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참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영화제 강국'이라는 칭찬이 '영화제 공화국'이라는 비아냥으로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 어떻게 비교했나

 문화부 산하 문화관광연구원이 주관한 '2007 국제영화제 평가'는 부산 전주 부천 제천 서울 여성 청소년 등 7대 국제영화제가 대상이다. 지난해 출범한 충무로 국제영화제와 서울국제 가족영상 축제는 각 영화제가 발간한 별도의 백서를 입수해 비교했다. '2007 국제영화제 평가'는 3개 영역 39개 항목의 지표를 사용한 평가이지만, '관객만족도' 등 점수를 내는 계량평가와 '프로그램의 질' 등 점수를 내지 않는 정성평가로 나뉜다. 조선일보는 이 중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몇몇 지표를 영화제별로 비교했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지원하는 7대 국제영화제 중에서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가 관객만족도 최하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10억원의 예산(정부·지자체 지원액 7억원)을 들여 신설된 국제가족 영상축제는 유료 관객 비율이 겨우 10.3%에 불과했다. 이는 조선일보가 '2007 국제영화제 평가'(문화광광부)와 개별 영화제 백서 등 정부의 영화제 평가 자료를 단독 입수해 비교·분석한 결과다. 부산영화제 출범 이후 13년이 지났지만, 개별 영화제에 대한 정부의 평가자료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차별성 없는 영화제가 너무 많다는 비판 속에 지난해 신설된 충무로 국제영화제의 경우 무려 41억원(서울 중구 37억원 지원)의 예산을 지출했고, 그 중 홍보비로만 6억2500만원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한국의 국제영화제 중에서 홍보비용으로는 최다 지출액이며, 충무로영화제의 입장료 수입총액인 1억6000만원의 약 4배 규모다.

이에 따라 부산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가 한국영화 발전에 끼친 성과는 인정하지만, 이제는 외형의 확장이나 신설보다 영화제 자체의 내실을 기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관객보다 영화제 행정을 우선하거나 방만한 운영을 계속할 경우 영화제 무용론까지 나오게 될 것"이라면서 "영화제는 왜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제영화제 투입 예산(충무로·가족 포함 총 9개)은 약 234억원이며 이 중 국고·지자체 지원액은 75억원에 달한다.